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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Nov 03.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5>-천지미상사문天之未喪斯文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외어광 왈 문왕기몰 문부재자호 천지장상사문야 후사자부득여어사문야 천지미상사문야 광인기여여하


-공자가 광 지방에서 위태로운 일을 당했을 때 말했다. "문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나 문이 이곳에 있지 않느냐? 하늘이 만일 사문을 없애려 했다면 후학들이 사문에서 함께하지 못했겠지. 하늘이 사문을 없애지 않을 것이니 광 사람들이 우리를 어찌할 수 있겠느냐?"     



공자와 제자들이 광匡이라는 이름의 땅에서 주민들의 오해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사문斯文은 '이(this) 문文'의 의미이지만, 유학의 도리와 문화 곧 유학 그 자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익숙하지요. 공자가 살아 있는 시대임을 감안하면 여기에서는 문왕 이래로 전해져 내려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더욱 발전시킨 글과 학문으로 보면 됩니다. 


문왕은 <<주역>> 64괘에 괘사卦辭를 붙였다고 전해지지요.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주역사전周易四箋>>을 남긴 학자답게 다산茶山은 위 구절의 문文을 단전彖傳과 상전象傳이라고 보았다고 합니다. 만약 위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면 다산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게 됩니다. 


'공자가 광 지방에서 위태로운 일을 당했을 때 말했다. "문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나 문이 이곳에 있지 않은가? 하늘이 만일 이 문을 없애려 했다면 내가 이 문에서 함께하지 못했겠지. 하늘이 이 문을 없애지 않을 것이니 광 사람들이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즉 후사자後死者를 단수로 보는 것이지요. 후사자는 '나중에 죽을 사람'의 뜻이니 공자 개인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혼자 한 말이니 만큼 문왕처럼 하늘의 학문을 익힌 자신을 하늘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文이 <<주역>>은 될지언정 <단전>과 <상전>으로 구체화되기에는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사자'를 공자와 제자들을 가리키는 복수의 개념으로 보아 '후학들'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공자의 말을 들은 제자들이 같이 있었을 텐데 공자가 자신만을 가리켜 주역적 하늘을 언급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늘의 뜻을 받았던 문왕의 후예로서 자신과 제자들이 한 것이라고는 열심히 학문을 닦고 도리에 맞게 산 것밖에 없으니, 곧 사람들의 오해가 풀릴 것이요 아무 해도 입지 않을 것이라며 제자들을 안심시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말에서 우리는 떳떳하게 살아온 사람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명재천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 볼 때(죽음으로의 선구先驅) 곧 죽음을 미리 가정해 볼 때 인간의 삶은 보다 가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겠지요. 죽음이 아니라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함없이 부조리합니다. 날마다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와 같은 우리의 언뜻 무기력해 보이는 삶에서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의 모습을 연상하며 비웃고 있겠지요. 하지만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이 삶의 현재에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할 때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가 생긴다고 카뮈는 말했습니다. 현재에 충실한 삶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반항이고 이 개인적 반항과 반항이 타자들을 향해 확장될 때 부조리한 세상과 맞설 수 있으며 비로소 우리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삶에 대한 우리의 충실함은 생업에의 종사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다운 현재를 만들기 위한 분투이며 그것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저항을 아우릅니다. 대도시 한복판의 골목에서 무참히 죽어가라고 하늘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위태로움에 처해 있는 국민들을 향해 달려오라고, 달려가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에게 국민들이 소리쳤어도 달려가기를 외면한 그 자들이 국민들을 죽인 것입니다.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이 부조리함에 반항하는 것이 현재에 충실한 삶입니다.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아직 누군가를 절절히 사랑하고 있는 한 우리는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사람의 죽음마저 부조리하도록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죽음도 그렇게 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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