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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Nov 02.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4>-의필고아意必固我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자절사 무의 무필 무고 무아


-공자는 네 단계를 끊었다. 의, 필, 고, 아를 버린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도 여러 버전의 해석이 존재합니다. 명료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의意는 소리 음(音)과 마음 심(心)의 합자입니다. 마음의 소리입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바, 이루고자 하는 뜻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필必은 마음 심(心)과 삐침 별(丿)의 합자입니다. 비록 사전에는 필必이 심心에서 유래한 글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논어와 같은 글을 쓸 때 글자의 기원 따위에 얽매였을리 없지요. 특히 시를 좋아했던 공자임을 감안하면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글자를 해체하고 조합하는 일에 거부감을 가졌을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주역적 사유에도 능했던 철학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역은 주역 특유의 은유법에 능통할 때 보다 심층적인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이니까요. 


무엇인가 하고자 하거나 되고자 하면 그것 하나로 생각이 압축되게 됩니다. '반드시 되고 말 거야', '기필코 해내고야 말겠어'와 같은 생각이 강해질수록 마음은 본래의 성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비뚤어지고 말지요. 별丿의 상징성입니다.


그런 생각이 오래되면(古) 스스로 만든 틀(囗)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완고하고 고루한 사람이 되고 말지요. 결국 고착固着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마침내 변화의 가능성을 상실한 존재가 됩니다. 손(扌)에 창(戈)을 들고 외부의 변화를 온몸으로 거부한 채 아집我執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처하는 것이지요. 


즉 우리는 의意, 필必, 고固, 아我가 점증법적 전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사絶四란 단순히 네 가지와 단절한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진행되지 않도록 마음의 근원을 다스린 개념인 것입니다. 의필고아 단계에서 벗어날 때 호학好學하며 인仁을 실천하는 불기不器의 군자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무毋는 무無요, '없다, 없애다'의 뜻이니 여기에서는 문맥에 맞게 '버리다'라고 풀이했습니다. 


부와 명예라는 목표 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위험한 이유는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을 활용, 악용하는 방법까지 터득하면 그것에서 소외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성향이 되기 쉽습니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타인들의 고통 앞에서 저열한 농담이나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것이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들조차 막무가내로 타인들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후안무치한 짓도 서슴지 않게 벌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뻔한 거짓말도 일상적으로 하면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목표 지향적 인간들로 포진된 정권 치하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생각이 없는 자들이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끼리 호의호식하는 세상에서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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