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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Nov 05.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6>-다능비사多能鄙事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子聞之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태재문어자공왈 부자성자여 하기다능야 자공왈 고천종지장성 우다능야 

자문지왈 태재지아호 오소야천 고다능비사 군자다호재 부다야 

뇌왈 자운 오불시 고예


-태재가 자공에게 물었다. "스승께서는 성인이신가? 어찌 그리 많은 것에 능하신가?" 자공이 말했다. "본디 하늘이 내신 큰 성인이시기에 능력이 많으신 것입니다." 

공자가 이를 전해 듣고 말했다. "태재가 나를 알랴? 나는 어렸을 때 빈천하였던 터라 이런저런 하찮은 일에 능한 것이다. 군자는 재주가 많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뇌(금로)가 말했다. "스승께서는 "나는 등용되지 못하였기에 예를 익힐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태재는 재상宰相의 뜻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나랏일을 하는 태재의 눈에 공자는 참으로 다재다능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주지하다시피 자공은 훗날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내는 인물이지요. 정치적 식견이 탁월하고 언변이 뛰어났습니다. 자공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서였는지 태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공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자공은 태재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적당한 정치적 발언을 합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냥 성인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하신 성인이시니 여러 가지를 두루 잘하실 수밖에요'라는 뉘앙스의 대답은 공자를 높이 평가하되 그 평가의 기준을 다능에 둔 태재의 높지 않은 식견 수준에 맞춰 주고 있는 것이지요. 자공의 입장에서는 '다재다능하다고 군자는 아닙니다, 대감' 식으로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 정도의 인식이라면 '자네, 지금 나를 가르치는 겐가?'와 같은 소리를 듣기 딱 좋을 테니까요. 자공이 훌륭한 정치가가 된 데는 다 그만한 자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국록을 먹는 고위 관리가 되기 위한 진로를 밟고 올라가느라 타 분야에 대한 경험이 적은 태재의 눈에는 이것저것에 능숙한 공자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공자는 그의 생각이 유치한 수준임을 지적합니다. 공자는 군자불기라고 하여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란 군자의 요건이 될 수 없다고 말했지요. 전문성 정도가 아니라 (육예六)에 능하다고 해서 군자보다 높은 수준의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공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내가 처했던 환경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경험적으로 터득한 재주나 능력이 어찌 곧바로 높은 수준의 영혼으로 이어지겠는가? 그것은 오직 배움을 통해 그 경험들을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로 연결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제자 금로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공자의 인식이 있습니다. 공자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방해로 공직에서 충분히 머물며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지요.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다양한 배움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공직자가 몸을 낮춰 국민 속으로 자주 내려가지 않으면 자신의 한정된 경험적 틀에 갇힌 채 민생과는 무관한 헛 정치, 헛 행정만을 하게 된다는 인식입니다. 공자가 말한 예藝는 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지요. 백성의 일원으로서 백성들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터득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관료들이 국민을 섬기지 않고 시한부 권력자를 맹종하면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짓만 하게 됩니다. 자기들 딴에는 치밀하게 기획했다고 자신하는 일들로 인해 민심을 잃어 갑니다. 왜 민심이 떠나는지 알지 못하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내달리다가 완전히 몰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시절에 우리는 또 하나의 몰락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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