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Nov 21.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18>-오지오왕吾止吾往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자왈 비여위산 미성일궤 지 오지야 비여평지 수복일궤 진 오왕야 


-공자가 말했다. "산을 쌓는 것에 비유하자면 삼태기 하나 분량을 이루지 못하고 그쳐도 내가 그치는 것이요, 땅을 평평하게 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삼태기 하나 분량을 덮고 나아가도 내가 가는 것이다."     



공자가 '위산'과 '평지'라는 비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학문이든 현대인들의 목표 개념이든 그는 지금 한걸음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내딛기를 포기하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는 것이지요. 


'인간은 과연 자기 삶의 주체인가, 인간에게 자율적 의지가 존재하는가'와 같은 오래된 존재론적, 인식론적 차원의 철학적 질문들과는 별개로 공자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인간인 한 우리의 몸과 몸 안에 담긴 정신의 현존성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유일무이한 존재자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특히 공자의 주장은 '역사든 학문이든 일보一步만이 진보'라는 발터 벤야민의 관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떼는 한걸음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결국 진보하는 사람이요, 그 진보가 모여 학문적 성취도 역사의 진전도 이룬다는 것입니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다짐과 어떻게든 글을 쓰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라 실제로 글 하나를 완성하는 실천이 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확보하게 해줍니다. 독서도 일도 글과 마찬가지이지요. 매일 읽는 책과 매일 하는 일이 누적될 때 변화를 일으킵니다. 삼태기 하나 분량의 흙처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묵묵히 퍼 담은 한 삼태기의 글과 사유와 일이 우리 자신과 인생을 업그레이드해 줍니다. 


그래서 오늘이 곧 내일이고 지금 이 순간이 곧 미래입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의 한걸음이 내일과 미래의 나를 멋지게 조각해 줍니다. 


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리더의 언행과 선택을 보면 내일의 나라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지요. 위정자들에 의해 왜곡된 거짓을 진실로 믿고 지나간 것이 아름답다며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사는 복고주의자들이나 빈약한 근거 위에 쌓아 올린 도그마에 사로잡힌 채 뇌의 유연성을 상실한 교조주의자들을 위해 준비된 미래의 나라는 없는 법입니다. 오늘도 뒷걸음질치기를 택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과거의 나라만이 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는 끔찍한 모습의 나라가 되지 않도록 깨어 있는 자들이 그들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이 땅을 앞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그치는 것이요 우리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17>-호덕好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