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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Dec 01.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28>-지인용知仁勇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자왈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헌문憲問> 편에서는 공자가 '지인용知仁勇'을 '군자도자삼君子道者三 - 군자의 도 세 가지'라고 칭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지인용' 하지 못하다고 겸손하게 얘기합니다. 


'불혹'은 미혹되지 않는 것이지요. 흔히 나이 마흔 살을 일컫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사물과 사람,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정신적 능력을 보유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자知者가 무엇인가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공자가 말하는 인仁은 최고 수준의 정신적 높이에 도달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와도 같습니다. 그야말로 성인聖人의 전유물이지요. 범인들의 욕망을 초월하여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널리 사람을 사랑하는 인자仁者에게는 근심이 있을 턱이 없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고독하게 지낼지라도 우울憂鬱해할 리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앞일을 알 수 없고, 단 하나의 목숨만을 갖고 있으며, 한 길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없는 인간의 유전자에 본능적으로 각인된 감정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두려움 없는 인간은 무모하기 쉽습니다. 아찔한 높이의 빌딩 난간을 걷거나 그것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나 움짤을 보면서 우리는 목숨을 담보로 한 무모한 짓에 혀를 내두르게 되지요. 철저한 훈련과 자기 극복을 통해 맨손으로 암벽을 오르는 프리솔로 다큐멘터리를 볼 때 느끼게 되는 인간 존재의 숭고함과는 다릅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요? 바로 두려움의 유무입니다. 두려움을 알고 인정할 때 사람은 자기 목숨을 가치 있는 것에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회수나 인기, 유명세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한계의 초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희생, 조국의 독립, 불의에 대한 저항 등의 고귀한 가치를 위해 자기 안의 두려움과 싸워 이길 때 우리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기업을 운영하거나 나랏일 하는 자들은 직원들과 국민들에게 생계를 위해 하는 일에 목숨을 걸도록 해서도 안 되고 일상 생활 공간에서 목숨이 위협 받도록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볼모로 잡은 채 사람들로 하여금 부당한 일의 노예가 되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허망하게 잃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고통스런 시간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금력과 권력이 있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은 두려움이 없기에 그토록 무모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용자勇者로 거듭날 수 없는 것입니다. 금력과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비겁한 양아치들에 불과하지요. 그런 자들로 인해 인간의 수준은 자꾸만 낮아집니다. 오늘도 개소리들을 이어가고 있는 무도한 자들이 직원들과 국민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 안의 두려움과 직면할 때 그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고귀한 가치를 갖지 못한 자들의 무가치한 삶의 허무함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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