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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r 24. 2023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17~18>-구독지량溝瀆之諒

17장과 18장을 한꺼번에 정리합니다. <헌문> 편 10장과 함께 읽을 때 관중에 대한 공자의 인식이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자로왈 환공살공자규 소홀사지 관중불사 왈미인호 자왈 환공규합제후 불이병거 관중지력야 여기인 여기인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따라 죽었으나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인하지 않다고 말해야겠지요?" 공자가 말했다.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할 때 무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다. 그러하여 인한 것이다. 그래서 인한 것이야."  



악한 양공을 떠나 그의 동생들인 소백小白(후의 제환공)과 규는 각각 거나라(莒)와 노나라(魯)로 갑니다. <<사기>>에 따르면 규가 소백의 형입니다. 양공 사후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돌아가 제후가 되었고 그에 도전한 규는 패배합니다. 그때 규를 따르던 소홀은 죽었으나 포로로 사로잡힌 관중은 포숙의 추천으로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제환공이 뭇 제후들의 패자가 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구(九)는 '모을 규'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인如其仁은 보통 주자의 설을 따라 앞에 수誰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 '수여기인如其仁' 곧 '누가 그의 인만 같겠느냐?'라고 해석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사如斯가 '이러하다'의 뜻인 것처럼 여如其 '그러하다'의 의미이니 위와 같이 자연스럽게 풀이하면 될 것입니다. 


17장과 18장에서 공자가 관중을 인하다고 인정하는 근거는 <옹야> 편 28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저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자공이 말했다. "만일 백성 중에서 널리 베풀어 민중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지요? 인하다고 할 수 있는지요?" 공자가 말했다. "어찌 인에 머물겠느냐? 반드시 성인이다. 요순도 그것을 다만 근심하셨다. 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할 때 남을 세우고 자신이 이루고자 할 때 남을 이루게 하니, 가까이에서 유사한 대상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인의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남(제환공)을 이루게 하고 그가 널리 베풀어 민중을 구제하도록 하였으니 관중은 충분히 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로는 공자의 설명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괴외의 난 때 그가 내린 선택은 그리 현명하지 못해 보이니까요. (자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옹야> 편 6장 참조)



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霸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자공왈 관중비인자여 환공살공자규 불능사우상지 자왈 관중상환공패제후 일광천하 민도우금수기사 미관중 오기피발좌임의 개약필부필부지위량야 자경어구독이막지지야


-자공이 말했다. "관중은 인자가 아니겠지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일 때 따라 죽지도 못한 데다 더욱이 그를 도왔으니까요." 공자가 말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패자가 되도록 했다. 천하를 하나로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에 이르도록 그 혜택을 누리고 있지.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오른쪽 섶을 왼쪽 섶 위로 여몄겠지. 어찌 필부필부의 고집과 같겠느냐? 도랑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는다고 해서 누구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피발'과 '좌임'은 관중이 아니었더라면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풍습을 따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경어구독'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 아래에서 한 여인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물을 피해 다리 밑을 서둘러 벗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이지 '다리 아래'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리석은 미생은 똥고집을 부려 다리 기둥을 붙잡고 버티다가 익사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뭣이 중헌지' 알지 못하는 소인들은 작은 것에 목숨을 겁니다.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알량한 자기 소견에 집착하다가 대의명분을 잃게 됩니다. 정부의 대일본 굴종 외교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나 국회의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검수완박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각하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착각하는 소인배들의 '구독지량'에 따른 자승자박의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공자는 재상의 그릇인 자공의 가슴에 사소취대捨小取大와 한신포복韓信匍匐의 뜻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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