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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r 26. 2023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19>-동승저공同升諸公


公叔文子之臣大夫僎 與文子同升諸公 子聞之曰 可以爲文矣

공숙문자지신대부선 여문자동승저공 공문지왈 가이위문의


-공숙문자의 가신인 대부 선이 문자와 더불어 공직에 나란히 올랐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문이라고 할 만하도다."  



공숙문자는 <헌문> 편 14장에 등장했었습니다. 예禮와 의義를 알고 실천했던 인물이었지요. 


공숙문자는 선이 자신의 가신 역할에만 머물기에는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그의 유능함이 쓰일 수 있도록 조정에 천거한 것이지요.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타인들로부터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이들의 경우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에 아래로 시선을 던지지 않습니다. 또한 유명해지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에서 자신보다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를 기꺼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싶어 할 뿐이지요.  


공숙문자는 자신의 아랫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래로 시선을 두었기 때문이지요. 그의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더 큰 영역에서 대의를 위해 그와 함께 일할 때 공공의 이익에 기여할 바가 크다는 것을 알고 실천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왜 부자가 되고자 하는가, 왜 성공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자문해 봐야 합니다. 뚜렷한 목적을 갖지 않은 채 그저 많은 돈을 벌고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공공선을 위해 쓰고자 부와 명예를 필요로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공숙문자에게서 우리는 평등의 가치를 읽어 내야 합니다. 대의를 위한 길에 신분 따위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평등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쓰일 때 누구나 균등한 기회를 보장 받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문文이라고 할 만하다고 말한 까닭은 <공야장> 편 14장에 나와 있습니다. (참조: https://brunch.co.kr/@ornard/929)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사유 재산제를 인간 불평등의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법률을 통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지요. 구현 불가능한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의 합리적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법의 역할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후배 검사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는 것은 평등과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그저 패거리 정치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선택적 법 집행은 불평등의 해소는커녕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며 공공의 가치를 훼손할 뿐입니다. 검치檢治에는 국민도 없고, 나라도 없고, 오직 최상위 지배자로서의 검사 이데올로기만 존재할 뿐입니다. 검찰 독재시대를 끝내고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의 순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주권자로서 진정한 자유를 되찾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잘못된 정부에서는 이 평등이 피상적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가난한 자는 계속 빈곤 속에서 살고 부자는 계속 수탈하도록 하는 데 쓰일 뿐이다. 사실 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는 유익하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해롭다. - 장 자크 루소" (조국, 『법고전 산책』, 오마이북(2022),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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