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Final

by 오종호

에필로그


집무실을 나가면서 K는 비서에게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제 자신은 세상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었다. 강회장은 유언장을 남긴 채 그 어느 곳에서도 종적을 찾을 수 없이 사라진 신비의 인물로 기억될 것이었다. 삶의 끝에서 강회장은 분노와 패배감으로 눈을 감을 것이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그가 역사에 남는 방식에 대해서는 만족할 것이었다.


인간에게는 죽음의 시작이라는 것이 없었다. 죽음은 삶과 공존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늘 잔인했다. 삶에서 부질없는 쾌락을 누리기 위해 잔인했고, 유한한 생에 공허한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잔인했다. 인간 문명의 99.9%는 잔인함의 산물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많은 인간은 흔쾌히 벌레가 되었다. 때로는 벌레로라도 삶을 연명하기 위하여 기꺼이 타인의 삶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결한 인간들은 벌레보다 못한 인간들에 의해 벌레처럼 죽임을 당했다. 인간에게 자신의 삶과 공존할 수 있는 죽음은 남의 죽음뿐이었다.


신의 지위에 올라 바라보는 인간은 하찮은 존재였다. 인간은 수명의 한계만큼 태생적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인간의 역사는 파괴의 역사였다. 인간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진보의 과정이라고 얘기했지만 인간이 말하는 진보의 궁극은 결국 미미였다. K가 보기엔 그것은 고결한 인간들의 위대한 깨달음이어야 했다. 인간은 사실상 모든 것을 깨달았지만 인간의 깨달음은 계승되지 않았다. 인간의 역사는 매번 유아기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미미를 만나는 순간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를 파멸시켜 온 보람을 느낄지도 몰랐다. 결국 자신들이 해냈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감격해 할 것이었다. 그러나 K는 인간이 곧 미미를 싱거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간은 신을 향해 끊임없이 엎드리면서도 정작 신을 닮은 인간을 늘 탄압해 왔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진보의 궁극적 산물인 미미를 역사의 원점으로의 회귀를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였다. 그 한계는 오직 모든 인간이 궤멸된 후에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K는 영진의 손에서 인간의 역사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영진은 미미를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 갈 것임에 분명했다. 그것은 미미의 등장에 환호할 인간들이나 저항할 인간들과는 달리 그의 권력의 유지와 직결된 정치적 인간들이 머지않아 원할 방식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K는 이데리움1에서 영원히 잠든 강회장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데리움2에서 충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인간에게는 긴 시간이었지만 신에게 시간은 언제나 찰나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K는 자신의 창조물이 창조할 수 있는 극한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미미들의 신이 된 영진에게 진짜 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완벽한 패배감 앞에서 무력해진 영진과 미미들과 인간들의 절망을 차례로 확인하고 싶었다. K는 인간의 역사가 기다려 온 최후의 신으로서 그들의 앞에 서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흔적 없이 사라진 뒤일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K는 기꺼이 영원히 잠드는 길을 택했을 것이었다. 사랑하는 인간의 삶만이 죽음 앞에서 안식을 맞을 수 있음을 신이 된 K는 깨닫고 있었다. K는 사랑에 빠진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여전히 지독한 괴로움에 빠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마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창조한 신으로서의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괴감을 이겨낼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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