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I

by 오종호

견성사見性寺라는 암자에 편재遍在라는 법명의 주지 스님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스승이 내린 실제 법명인지 아니면 그의 몇 안 되는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인지는 분명치 않았으나 하여간 그는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편재 스님과 관련한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했던' 몇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무미無味 스님의 사연이었다. 새벽 두 시에 몰래 공양간에 숨어들어 찬밥 한 덩이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알루미늄 배트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은색 몽둥이가 먼저 입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이빨을 모두 잃어 버린 나이 서른의 무미 스님은 그 날 이후 한 동안 강의 남쪽에 있는 이름난 치과들을 모조리 찾아 탁발을 다녔는데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과 약 2초 동안 안면을 익힌 후 두 번째 방문에 나섰을 때는 희한하게 모든 치과의 입구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일화는 국민들에게 진정한 법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늦은 나이지만 사법고시에 도전하겠다고 절을 찾은 한 고시생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고시생은 자신은 돈이 많지만 큰 뜻을 품었기에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며 절의 일 년치 운영비에 해당하는 돈을 쾌척하고 난 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태해진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깨우쳐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합격의 그날까지 묵언수행을 해나가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날부터 새벽 세 시에 일어나 108배를 올리고 이른 아침 공양을 마친 후부터 좌선하듯 공부에 빠져 든 고시생이 잠시 졸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은색 몽둥이가 날아와 머리통을 때렸는데, 그 이후 졸음이 밀려오면 책을 들고 숲 속을 거닐며 졸음을 이기고자 하였으나 서 있어도 졸음은 끝도 없이 쏟아지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조차 날아오는 매 타작에 머리통에 성한 부분이 남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고시생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한 스님이 일찍 잠자리에 들어 늦게까지 푹 자고 낮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108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하더라도 계곡물에 땀을 씻고 나서 공부하면 더 잘 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고시생의 고집은 대단한 것이어서 머리통이 공갈빵처럼 부풀어 오를 때까지 공부하면서 졸다가 맞기 또는 졸면서 공부하다가 맞기는 계속 되었다.


여느 때처럼 은색 몽둥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 어느 날, 숲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고시생은 다짜고짜 짐을 챙겨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법으로 세상을 바로잡기에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그 동안 자신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스님에게 귓속말로 남겼다는 후문이었는데 그 스님이 고시생이 떠난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을 때 벽에 굵은 매직으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내 나이 일흔 일곱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

은빛 몽둥이에 세상을 알았으니

영원한 잠에 빠지기 전에

힘써 깨어 즐기고자 한다.


몇 안 되는 제자들은 편재 스님이 나이가 좀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고시생이 조는 순간마다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는지 경이로웠지만 차마 입을 열어 물어볼 수 없었던 것이 자신들의 머리통의 안위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호기심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스님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는데 삼일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고시생이 유일하게 묵언을 깨뜨린 청소 담당 스님이었다. 고시생은 책을 펼치고 들여다보면 언제 어느 때라도 30초 이내에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드는 탁월한 경지에 올라 있었음을 그 스님은 알고 있었다.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재 스님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리는 없었던 것이니 아무 때고 고시생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그곳에 몽둥이를 기다리고 있는 무념무상의 머리통이 대기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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