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이 남기고 간 일년 치의 운영비에도 불구하고 속세에서라면 흔한 회식 한 번 없자 몇 안 되는 제자들이 하나 둘씩 다른 절로 떠나갔다. 무미 스님의 입맛이 예전만 못해진 어느 날 편재 스님은 요리 학원에서 눈이 맞은 남자를 따라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한 여신도가 버리고 간 개를 거두어 키웠는데 유일하게 남았던 제자인 무미 스님마저 '교회의 넘치는 사랑에 힘입어 깨달음을 얻고 하산한다'는 메모를 찬밥의 밥풀을 이용해 가마솥 뚜껑에 남기고 떠난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터였다.
편재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네가 있는 곳이 네가 있을 곳이라며 교회에서라도 성불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넬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무미 스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종한 여신도를 통해 표창장과 함께 임플란트 무료 시술권을 보내온 ‘사랑이 넘치는 교회’야 말로 구도를 향한 정진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하루 삼시 세끼 공양을 직접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편재 스님이 점점 그것에 익숙해져 간 데에는 개의 존재가 매우 크게 작용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며 꼬리를 살랑 흔들고, 밥을 내어주면 하나도 남김없이 혓바닥으로 깨끗이 비우는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이면 깨어 예불을 드리는 내내 옆에 엎드려 있다가 아침이면 따뜻한 아침 햇살을 쬐며 낮잠을 즐기고, 낮이면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꽃과 풀의 냄새에 푹 빠졌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다소곳한 자세로 예불에 참여하는 녀석의 모습은 대견한 것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중의 암자여서 그런지 원래 주인에게 버려지고 편재 스님에게 거둬진 날부터 녀석은 단 한 번도 짖지 않은 채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완벽한 침묵을 유지하였다.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했던 편재 스님일지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작은 절에서 날마다 동일한 일상을 사는 것이 다름아닌 불현듯 밀려드는 외로움과의 대결이었기에 녀석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 해 한 해 세월이 갈수록 공유한 시간은 일각의 낭비도 없이 그대로 둘 만의 사이 안에 녹아 들고 축적되어 삼 년이 지날 즈음에는 함께 잠자리에 들고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을 드리고 함께 아침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시주를 나가고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저녁 예불을 드리고 다시 함께 잠자리에 드는 관계로 숙성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돈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둘이 떨어져 있는 때는 편재 스님이 해우소에 들어가 앉아 있는 동안 해우소 밖에서 녀석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뿐이었다.
맛없는 식당에 손님 오듯 몇 개월에 한번씩 산행 중에 길을 잃고 우연히 절에 찾아 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스님과 개의 다정한 사이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편재 스님과 개를 일컬어 영혼의 동반자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아마도 전생에 스님이 개였을 때 그 개가 스님이지 않았겠느냐는 하나마나 한 추측을 너도나도 입을 모아 할 정도로 둘은 매 순간 어디에나 함께 존재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