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바람은 잦아든 듯 정적이 감돌았다. 온 몸이 쑤시는 고통을 느끼며 멘쉬는 눈을 떴다. 벌써 어둠이 내린 것인지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만 짙은 어둠뿐이었다.
눈이 어둠에 조금씩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들 무렵 멘쉬의 콧구멍 앞으로 낯선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비슷하긴 하지만 하나가 아닌 여러 개체에서 나는 냄새임이 분명했다. 등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들이 도깨비불처럼 멘쉬의 몸을 에워쌌다.
“으악!”
“놀라지마. 우린 너를 해치지 않아. 막내야, 문 활짝 열어라.”
왼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간 눈에 통증을 느낀 멘쉬는 두 눈을 찡그리면서도 그제서야 자신을 둘러쌌던 도깨비불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커다란 귀를 귀엽게 흔들고 있는 사막여우 가족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멘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갑자기 천장으로 떨어져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으니 네게 손해배상을 요구하지는 않겠어. 또 우린 땅파기에 나름 재주가 있으니 금방 수리할 수 있을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너는 어디서 왔지? 내 평생 본 것 중 가장 끔찍한 모래 폭풍이었는데 여기서 살아남다니 정말 운이 좋은 편이구나, 너.”
팔 남매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오버백(Overback)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말했다.
“낙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내 소원 중의 하나가 이루어진 셈이야.”
오버백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런 지옥 같은 폭풍이 다녀갔냐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뜨거운 태양만이 모래를 달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막은 이미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난 뒤였다.
몸을 날렸던 언덕은 사라지고 없었다. 동료 낙타들과 사람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멘쉬가 그들이 부디 무사하기를 비는 마음속 기도를 마치기 무섭게 오버백이 말했다.
“자네 혼자만 남은 모양이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니까 말이야.”
오버백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멘쉬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의 바다를 무심한 눈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자네가 많이 힘들었겠군.”
아내가 친정에 간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는 오버백의 말에 멘쉬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꼭 그렇지는 않아.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거든. 아이들 끼니 챙겨 주는 것이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온전히 내 시간이니까 말일세. 이렇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네. 자네 기분이 많이 착잡할 텐데 내 얘기만 해서 미안하군 그래.”
“오늘은 유달리 별이 많은 것 같아.”
멘쉬의 말에 오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아, 삼촌 귀찮다 그만 좀 내려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오버백의 아이들은 멘쉬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겐 아빠가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삼촌의 업고 달리기도 엄청 스릴 넘쳤고, 삼촌이 엎드려 있을 때 등에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는 재미가 기가 막혔던 것이다. 굴 안에서 낮잠을 잘 때면 팔 남매가 모두 멘쉬의 품을 파고 들며 재워 달라고 칭얼거리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멘쉬는 뭔가 오버백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흐뭇해지기는 했으나 한시라도 빨리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당신은 누구죠? 얘들아, 너희들 누가 낯선 동물을 집에 들이라 했어. 너희 아빠는 또 어딜 간 거야? 정말 정신 나간 여우 아니랄까 봐.”
“엄마아아아!”
오버백의 아내가 양손에 두툼한 보자기를 들고 하나는 머리에 인 채 굴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엄마의 품에 안겼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수씨. 오버백의 친구 멘쉬라고 합니다. 오버백은 먹거리를 구해온다고 나갔습니다. 얼추 돌아올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멘쉬가 모래 위에 엎드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바위 아래에 나 있는 굴의 또 다른 출입구 안쪽에서 오버백과 그의 아내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여우는 아무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들의 목소리는 바위에 부딪혀 굴 밖으로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왜 낯선 동물을 끌어들여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렸냐는 여자의 질문과 낙타는 자기가 평생 가까이 하기를 소망했을 만큼 배울 점이 많은 위대한 동물이지 결코 해를 끼치는 동물이 아니라는 남자의 답변으로 언쟁은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그렇게 낙타가 좋으면 낙타하고 살라는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도 대화의 중간마다 끼어들었다.
아이들은 이 풍경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모래구덩이들을 파며 하루 종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멘쉬, 어서 일어나게.”
“누, 누구?”
“쉬잇! 얘기는 나중에 하겠네. 일단 어디 좀 가세나.”
사막의 밤하늘을 서늘한 이불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멘쉬를 이른 새벽부터 다짜고짜 깨운 오버백은 연신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여긴 어디지?”
약 한 시간을 걸어 도착한 곳에는 멘쉬의 키보다 몇 배는 큰 시커먼 바위 두 개가 서 있었다. 그 위로 사탕을 갈아 뿌려놓은 듯 빛나는 별들이 새벽이 오는 하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쪽으로.”
멘쉬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바위들 사이로 달려가다 홱 돌아선 오버백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멘쉬는 두 개의 바위 사이로 들어가 땅 속으로 경사진 길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높이 치솟은 두 개의 바위가 닿아 있는 천장의 가느다란 틈을 통해서 한 조각 달빛이 영롱하게 새어 들어 땅에 내려앉고 있었다. 바위 밑 동굴은 낙타 열 마리는 여유 있게 잘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널찍했다. 오버백은 달빛과 어둠의 경계에 등을 돌리고 서서 벽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걸 보게, 멘쉬.”
멘쉬가 다가간 벽에는 포옹하고 있는 낙타와 사막여우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막여우가 끌어안을 수 있도록 고개를 낮게 늘어뜨린 낙타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림 속 둘의 머리 위로는 밤하늘이 검게 칠해져 있었고 오늘처럼 사막의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가운데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을 따라가게, 친구.”
“별? 무슨 별?”
“고개를 들어봐.”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멘쉬의 눈에 그림 속 별이 떠 있었다.
“저렇게 큰 별이 정말 있다고?”
“어린 시절, 아버지는 친구들과 놀다가 뱀에게 물린 채 모래 위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계셨다고 하네. 몸과 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마치 영원한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셨다고 하네. 깨어나 보니 옆에 낯선 동물이 별을 보고 있더래. 그림 속의 저 낙타 말이야. 무려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었던 아버지를 플라통(Platong)이라는 이름의 그 낙타가 간호해 주었던 거지. 그 자리가 바로 이곳이야. 플라통이 떠난 후 아버지는 여기에 그림을 남기신 거라네. 플라통은 별을 향해 걸어갔다고 하셨어. 눈을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해.”
“눈? 그게 뭔데?”
“플라통은 얘기했대. 우주에는 수많은 생명이 있는데 삶이 다하면 어느 생명이나 밤하늘의 별이 되는 거라고. 하지만 삶이 아름다웠던 생명들만 또 다른 생명들을 품을 수 있는 별이 된다고. 못된 짓을 한 생명은 죽음의 별이 되어 끝없이 기나긴 세월을 아무도 찾지 않는 차가운 공간에서 외로이 견뎌야 한다고. 눈이란 그 고독한 별들이 슬픔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자기들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생명들이 있는 가장 가까운 별을 찾아 내리는 거라고.”
“어디에 가면 눈을 만날 수 있는데?”
“아버지도 같은 질문을 했었나 봐. 플라통은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대. 하지만 사막이 세상의 전부는 분명 아닐 거라고 믿었대. 하늘도 구름도 바위도 꽃도 풀도 바람도 낙타도 여우도, 이곳은 아름다운 생명들로 가득한 별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새 한 마리를 만났는데 모래만큼 많은 물로 이루어진 사막이 있다고 했대. 사람들이 바다라고 부르는 그곳을 찾아가면 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플라통은 생각했다더군. 아버지는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 플라통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대. 플라통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기는 다만 우연히 그곳을 지났던 것뿐이라고, 자기가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고 했다는 거야. 그리고는 저렇게 그림처럼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졌대.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낙타들을 기다렸대. 플라통에게 진 신세를 다른 낙타에게 꼭 갚고 싶으셨다고 해. 하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다른 낙타를 만나지 못하셨지. 아버지는 내게 이 그림을 보여 주시면서 만일 내가 낙타를 만나게 되면 당신 대신 꼭 은혜에 보답해 달라고 유언하셨어. 오랜 세월 낙타를 기다렸지만 이제서야 자네를 만나게 된 것이지. 며칠 동안 자네를 지켜보면서 아버지의 말씀처럼 낙타가 얼마나 아름다운 동물인지 알게 되었네. 나는 비록 자네와 함께 갈 수는 없지만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네에게 고마움을 표하네. 그리고 플라통을 만나거든 언더백(Underback)의 아들 오버백이 감사하더라는 말을 꼭 전해 주길 바라네.”
“꼭 그리하겠네, 오버백.”
“고맙네, 멘쉬, 나의 친구. 자네의 행운을 비네. 바다를 꼭 만나길 바라네. 그리고 플라통과 그가 찾았던 눈도.”
오버백은 멘쉬의 긴 목을 끌어안았다. 멘쉬는 눈을 지긋이 감고 친구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다른 별들은 녹아 없어지고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시간까지 오버백은 떠나지 않고 친구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멘쉬가 다섯 번째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자 오버백의 모습은 이제 모래알처럼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멘쉬는 알았다. 여전히 친구가 손을 흔들며 서 있다는 것을.
멘쉬는 친구를 향해 큰소리로 울음 하나를 울고는 또 다른 언덕을 향해 다섯 번째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언덕 위에서 이제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멘쉬는 영원히 친구의 모습을 잊지 않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