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찾아 떠난 낙타 - 3. 때

by 오종호

오버백과 헤어진 지 보름 정도가 지난 듯 했다. 멘쉬의 앞으로 사막은 여전히 끝을 내보이지 않았고 모래처럼 많다던 바다의 물 냄새는 아직 바람에 실려오지 않았다. 갈 길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멘쉬는 힘들지 않았다. 오버백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몸 속에 비축해 둔 물은 아직 한 달을 너끈히 버틸 수 있을 만큼 남아 있었다.


낙타는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홀로 바라보며 잠드는 밤하늘마다 멘쉬는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그리고 바다를 보고 싶었고, 플라통이라는 낙타를 만나고 싶었으며, 그가 눈을 만났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자신도 눈을 보고 싶어졌다.


멘쉬는 유난히 큰 별이 깨어 있는 밤하늘 아래에서 잠들었고, 유난히 반짝이던 별이 잠자리에 들어가는 새벽 하늘 아래에서 일어났다.




다시 보름이 지났다. 그 동안 해는 단 하루도 변함없이 불처럼 활활 타올랐고, 불이 꺼진 차가운 밤마다 사막의 모래가 날아가 박히기라도 하는 듯 별들이 밤하늘에 새하얗게 달라붙었다. 유난히 큰 별은 언제나 멘쉬의 머리 위에 등대처럼 떠 있었다.


멘쉬는 오늘따라 더욱 싸늘해진 밤공기 탓인지 몸에서 자꾸만 기운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목이 마르고 으슬으슬 한기가 드는 듯이 몸이 떨려왔다. ‘감기일까? 아직 갈 길이 먼데 아프면 안 되는데……’


멘쉬의 생각과 달리 이마에서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밤공기는 더욱 춥게 느껴졌다. 멘쉬는 싸늘한 모랫바닥에 엎드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어떻게든 추위를 덜기 위해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 소리가 귓전에 크게 들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잠이 밀려왔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지도 몰라. 푹 자고 나면……’ 이렇게 생각하며 멘쉬는 잠에 빠져들었다.




“다 잤나?”


눈을 뜬 멘쉬의 앞에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밤이었고 하늘에도 변함없이 별이 찾아와 있었다.


“제가 얼마나 잔 거죠?”

“얼마나 자긴 뭘 얼마나 자? 한 둬 시간 되었지.”


멘쉬는 한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돌아온 몸이 반가웠으나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마틴(Martin)이라고 한다. 의사였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지만 오늘은 죽어가는 낙타 한 마리를 살렸어.”

“죽어갔다구요?”

“글쎄, 그걸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달리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모르겠군.”


모닥불로 인해 얼굴이 발갛게 익은 마틴이 멘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틴은 멘쉬의 몸이 심각한 탈수 증세를 겪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 무리함으로써 결국 충격이 한꺼번에 밀어닥친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쓰러진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자기가 발견한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의 생명의 은인이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굳이 뭐 은인이랄 것까지야. 멘쉬 자네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저 별이 지켜준 것이겠지.”


마틴이 유난히 큰 별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당신도 저 별을 아시나요?”

“이 사막에서 저 별을 모르는 바보도 있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못 본 걸요.”

“아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때를 막 지난 것이로군.”

“말씀하시는 그 때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자네를 봤을 때 장거리 여행을 처음 하는 초보자의 티가 났지. 자신의 건강한 몸을 과신한 젊은 낙타. 이론만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계산하고 쉼 없이 자신의 영양분을 바닥내 버린 무모함이 그대로 읽혔어. 그런데 그런 자네가 의사인 나와 이 사막에서 만나 살아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자네가 자네의 몸으로 사막의 벌레들을 배부르게 하는 것보다는 아직 좀 더 의미 있는 것을 해야 할 운명임을 직감할 수 있는 것이지. 즉 지금은 죽을 때는 아닌 거야, 살아서 무엇인가를 할 때인 것이지. 때란 그런 것이라네.”

“고마운 일이군요. 당신은 어떤 때인가요?”

“나? 이런 질문을 받아본 지 정말 오랜만이군. 나는 나 자신을 치료할 때이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군요.”




“누구에게나 일은 있어. 그게 삶이지. 나는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며 살아 왔어.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네. 길어야 겨우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보람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받았어. 의사가 되기 위해 젊음을 다 바쳤고 의사가 되고 나서 남은 젊음을 다 바쳤더니 때가 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셈이지. 마치 누군가 내게 그만해도 되는 일 따위는 멈추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일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진짜 일이 터져 버리고 만 거야. 그런데 진짜 일에 대해 나는 너무 아는 게 없었어.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도 아무도 없더군. 그저 울음을 터뜨리거나 남은 시간 동안 인생을 잘 정리하라고 충고하는 게 전부였지. 웃긴 것은 나에게는 더는 없을 날들을 대비하여 나로 하여금 자꾸 무엇을 하라고 시키는 거야. 모아둔 돈은 얼마나 되는지, 집과 차 외에 팔만한 땅이나 건물은 없는지, 그것들을 누구에게 남길 것인지 잘 정리해 달라는 거야. 나는 그런 한심한 일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네. 그래서 사막으로 날아 왔어. 사막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으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골탕 좀 먹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아니었어. 그저 그가 얼마의 돈을 남겼는지 뿐이야. 그가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무슨 옷을 즐겨 입었는지, 저녁 식사로 뭘 먹을 때 가장 행복해 했는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인지, 보람 있었던 일들은 무엇인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고. 휴우! 사막에 와서 밤마다 별을 보니까 어느 밤 문득 깨달아지더군. 지금 죽으나 몇 십 년 더 살다 죽으나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 별에서 내가 살다 죽는 게 우주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고. 그저 풀 한 포기가 길가에 피어났다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은 없었지더라고. 그리고 내가 있던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도 사막엘 와보면 다른 삶을 살게 될 텐데 말이야. 진짜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얘기해 줄까?”

“네, 뭔데요?”

“내 병이 다 나았다는 사실. 크하하하하.”

“그럼 좋은 거잖아요?”




“왜 어떤 연유로 그곳에서는 때가 왔다고 했다가 이곳에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인지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 분명한 것은 내가 있던 곳으로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지. 편지를 보낼 생각이야. 나에게 자주 치료 받던 그 변호사에게 말이지. 내 남은 시간을 돈 정리하는데 다 써야 한다고 날마다 찾아오던 그 친구에게 말이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의 전 재산을 한 푼도 건드리지 말고 은행에 보관하라고 쓸 거네. 편지를 받은 날부터 30년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을 때에 이르러서만 편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더 작은 봉투를 뜯어 그 내용대로 하라고 말이야. 그 봉투 안에 담을 내용은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볼 작정이네. 여하튼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해진 나라는 존재가 이 사막 어딘가에 있는 우체국에서 꼬박 30년 간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돈을 만질 수 없도록 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말 거야. 그리고 덕분에 30년은 너끈히 더 살게 될 테지.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의 장수를 돕고 있는 것일세. 하하하.”

“당신은 고약한 의사로군요.”

“그 말이 정답이군. 하지만 나는 이 기분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아. 몸의 병은 사라졌지만 아직 마음을 치료하진 못했으니까. 정확하게는 치유라는 단어를 쓴다네. 나에게 지금은 그래서 나를 치유할 때인 거야. 그러는 자네는 어디를 향해 그리 바삐 가고 있었던 것인가?”

“모래 폭풍을 만나서 일행을 모두 잃었어요. 그들에겐 정말 안된 일이지요. 친구 덕분에 살아남은 저는 바다를 본 낙타가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물이 모래만큼 많다는 곳, 그곳에 가고 싶어요. 당신은 혹시 바다를 본 적이 있나요?”

“바다라…… 여러 번 보았지.”

“그래요? 거긴 어떤 곳인가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가장 깊은 곳이랄까…… 네가 직접 보고 느껴 보길 바란다. 사막에 오기 전까지 사막에 대해 가졌던 나의 생각은 모래 위에 첫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모두 부서져 버렸거든.”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너는 바다를 향해 가고 나는 나를 치유하러 가는구나. 너만의 바다를 꼭 만나기 바란다. 그럼 오늘 여기서 너를 만나게 된 보람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이제 자자꾸나. 내일은 또 길을 떠나야 하니까 말이야.”



뜨거운 햇살이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잠에서 깬 멘쉬의 눈앞에 여러 개의 물통이 뚜껑이 따진 채 놓여 있었고 마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긴 발자국만이 그가 어디를 향해 걸음을 옮겼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길은 멘쉬가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의 정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멘쉬는 물통을 차례로 입에 물어 남김없이 몸 안에 저장해 두기 시작했다. 물은 아직 달았고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