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찾아 떠난 낙타 - 4. 일

by 오종호

마틴과 헤어진 지 한 달여가 흘렀다.


밤이 되자 어김없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어둠이 내려왔다. 별은 여전히 많았고 유난히 밝은 별도 여느 때처럼 반짝였지만 오늘은 달빛이 더 밝았다. 무게를 못 이겨 하늘에 묶인 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달은 컸다. 멘쉬는 자신이 나아가는 길 정면에 달이 떠 있는 바람에 언덕 밑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중에 달이 사막을 향해 추락을 시작할 것만 같은 착각에 여러 번 빠졌다.




눈 앞의 언덕에 오르면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걸음을 디디고 올라선 찰나 언덕 위에서 시커먼 무엇인가가 달의 가운데로 휙 치솟는 바람에 멘쉬는 깜짝 놀라 발을 헛디뎌 모래 위에 나뒹굴고 말았다.


“안녕, 낙타야?”


모래 속에서 얼굴을 든 멘쉬의 앞에 팔 하나의 힘으로 몸을 지탱하고 거꾸로 선 온통 시커먼 몸의 사람이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달빛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가 했지만 나머지 팔 하나를 땅에 짚고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내려온 그의 벌거벗은 상체와 얼굴 피부는 밤의 색깔만큼 짙은 검은색이었다.




“놀랐다면 미안해. 내 이름은 버그송(Bergsong), 자네 이름은?”


입안의 모래를 내뱉으면서 멘쉬는 자기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이곳까지 올라온 낙타는 처음 보는군. 자넨 어쩐 일로 여기에 왔나?”


달이 각각 하나씩 들어 있는 두 개의 노란 눈동자를 코앞으로 들이밀며 버그송이 물었다. 짙은 땀냄새가 훅 풍겨왔다.


“바다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바다? 바다는 뭣 하러?”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다를 꼭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눈도요.”

“그래? 그렇군. 바다와 눈이라. 눈 내리는 바다에 가야겠구만. 하기야 뭘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그러는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가요?”

“나? 나는 달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네. 나는 높이 뛰는 사람(high jumper)이거든.”


버그송에게는 대답할 때 꼭 앞의 질문을 다시 짧은 질문으로 받으며 시작하는 버릇이 있는 듯싶었다.




“달엘 간다구요?”

“그렇다네.”


버그송은 멘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곧바로 증명했다. 그는 질문을 빼고도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달에는 무슨 일로?”

“정확히 말하자면 달에 잠깐 들렸다가 우주 탐험을 시작할 계획이라네.”




“우주 탐험요?”

“그렇다네.”


멘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버그송의 얼굴과 그의 뒤에서 금새라도 떨어져 쿵쿵거리며 굴러 내려올 것만 같은 둥그런 달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버그송은 멘쉬의 시선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려 달의 위와 아래를 잡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이곳이 달과 가장 가까운 장소야. 내 계산이 정확하다면 앞으로 한 시간 후에 내가 원하는 위치에 달이 있게 될 거다. 그럼 나는 달 위로 뛰어내릴 참이라네. 그 다음엔 저 달에 고삐를 매고 우주를 향해 날아갈 것이고. 뭐 그럼 나의 우주 탐험이 시작되는 셈이지.”

“달에 올라타는 것이 가능한 건가요?”

“가능? 가능이 무슨 뜻인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는 의미라고 배웠어요.”

“그렇다면 자네는 쓸데없는 것을 배운 셈이군. 세상에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세상에는 한 일과 하지 않은 일만 있는 거야. 내가 달을 향해 건너갈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달을 향해 건너가려고 뛰어내렸는가 뛰어내리지 않았는가만 남을 뿐이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네. 내가 한 시간 후에 이곳을 박차고 뛰어오르면 그것은 내가 한 일이 된다네. 뛰어오르지 않는다면 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일 테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다면 나는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살겠지. 그렇게 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란 발생할 수 없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멘쉬?”

“당신의 말은 사막의 어둠에서 당신의 몸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알아듣기 힘들군요, 버그송.”

“그런가, 멘쉬? 사실 저 달이라는 녀석은 눈과 귀가 굉장히 밝다네. 꽤 도도하기도 하지. 이미 무려 99번이나 나의 도약을 피했었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결과가 내가 100번째에도 다시 모래 위에 머리를 처박게 될 것임을 증명하진 못하지. 아직까지 100번째 점프는 한 일도 하지 않은 일도 아니니까 말이야. 이번에는 자네가 지금 보듯이 내 피부 색깔이 사막의 밤을 닮아 있으니까 달이 나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할 거야. 이번에는 달의 그림자 쪽으로 뛰어내릴 것이거든. 매번 달의 앞쪽으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단 말이야. 생각해봐. 아무리 멍하니 있어도 눈앞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물체에 움찔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 아니겠어?”



버그송은 멘쉬에게 하얀 눈동자를 동그랗게 고정시키고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댔다. 멘쉬는 달과 함께 그의 100번째 도움닫기의 유이한 목격자가 될 것임을 알았다. 그 사실과는 별개로 여전히 멘쉬에게는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당신이 달을 타고 떠난다면, 저는 두 번 다시 달을 볼 수 없게 되는 건가요?”

“흠. 이거 예상치 못한 질문인 걸?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질문이야, 멘쉬. 그렇군, 그래. 내가 달을 타고 가버리면 멘쉬 자네는 달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로군.”

“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저는 별빛만으로도 밤길을 걸어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큰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달이 없으면 몸이 아파 사막에서 쓰러진 이들을 누군가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달빛이 없다면 누군가 여행 중에 모래 언덕 위에서 정신을 잃은 낙타를 발견한 일이 발견하지 못한 일로 바뀌어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버그송은 달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달과 정면으로 맞선 그의 몸통 양쪽으로 달빛이 몇 배는 더 눈부시게 멘쉬의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달의 뒤에서 그의 검은 등은 더욱 어둡게 보였다. 달의 등도 그 어둠과 닮아 있을 것 같았다. 멘쉬는 그의 등에서 홀로 앞을 보고 선 존재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등에 매달린 외로움이 그를 앞으로 내달리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멘쉬는 생각했다. 그의 땀에서 흥분의 감정이 풍겨 왔다. 멘쉬에게 그 냄새는 그가 점점 더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멘쉬?”

“네, 버그송?”

“부탁 하나만 들어 주겠나?”

“말씀하세요, 버그송.”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 달은 나만의 달이 아니었던 것이야.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 고맙네. 그래도 나는 달이 아니라면 달리 갈 곳이 없어. 이 세계에서 나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거든. 한 일과 하지 않은 일밖에는 없으니까. 달을 데리고 가진 않을게. 그저 달에서 자네가 눈 내리는 바다를 만나는지 지켜보도록 할게. 행운을 비네, 마이 프렌드.”


말을 마친 버그송은 오른손을 내밀어 멘쉬의 콧잔등을 여러 번 쓸어 주었다. 밤이슬이 내려앉은 멘쉬의 코는 촉촉히 젖어 있었다.




버그송은 멘쉬의 얼굴을 가로막고 몸을 돌렸다. 달의 몸통은 버그송의 오른쪽 어깨 위로 조금 더 삐져나와 있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멘쉬의 콧등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버그송은 등 뒤로 왼손을 올려서 흔들었다. 그것이 그가 남기는 마지막 인사일 것임을 멘쉬는 짐작했다.


버그송은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선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지체 없이 자리를 박차고 모래 언덕을 질주해 올라왔다. 버그송의 몸을 쫓는 멘쉬의 눈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동자를 때리는 거친 달빛의 질감에 멘쉬는 순간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찡그리며 슬쩍 치켜 올린 왼쪽 눈의 좁은 시야 안으로 검은 물체가 공중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버그송의 발은 달의 등쪽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매끄러운 살갗의 검은 표범처럼 그의 몸은 중력을 거부한 채 밤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멘쉬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버그송의 몸은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달도 보이지 않았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만이 더욱 반짝거리고 있었다.



멘쉬의 눈동자는 버그송이 사라진 곳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언덕 아래로 이전에는 없었던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별빛들도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서 있었다. 암흑의 목구멍에서 한줄기 바람이 올라와 멘쉬의 발 앞에 있는 모래를 훑어 가기 시작했다. 멘쉬의 발은 저절로 뒷걸음질쳤다.


버그송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동그란 눈망울을 깜빡이는 멘쉬에게 어둠의 아래에서 건너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래만이 줄지어 아래로 빨려 들고 있었다.




햇살은 바늘처럼 쏟아졌다. 언덕 끝에서 길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버그송은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았다. 모래 아래에 숨어 있는 세계는 사막의 어둠 속에서만 열리는 것이라고 멘쉬는 생각했다. 달은 그곳에서 피고 그곳에서 지는 것일 것이었다. 밤이 아니면 달을 만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었다.


버그송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는 그리하여 매번 사막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올랐을 것이었다. 달이 그를 피한 것이 아니라 달을 삼키는 어둠의 목구멍을 향해 그가 뛰어내릴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달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 그에겐 한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99번의 하지 않은 일은 100번째의 시도로 한 일이 되었다. 그 일은 이 세상의 일과는 무관한 듯했지만 멘쉬는 그가 한 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 세상의 끝에서 그가 한 일이 모래 아래의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멘쉬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에게 어떤 하지 않은 일들이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밤, 다시 달이 떠오르기를, 달 위에서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멘쉬는 다만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