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달 정도가 지나간 느낌이었다. 유난히 큰 별의 자리가 이전보다 조금 아래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해가 떠나기도 전에 몇 개의 별들이 얼굴을 디밀었다. 그 별들은 어둠뿐만 아니라 밝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제 몸의 특별함을 뽐내려는 듯했다. 자신들도 유난히 반짝이는 별 못지 않다고 아우성치는 것처럼 보였다.
모래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에게는 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눈이 닿는 가장 먼 곳에서 모래는 하늘로 이어져 있었다. 모래와 하늘이 몸과 몸으로 만난 자리에서 붉은 노을이 연기처럼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노을은 눈에 보였지만 몸 너머의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 그랬다. 해도 별도 노을도. 그 중의 하나인 달로 버그송은 건너갔다. 멘쉬는 사막 위에 있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서로 떨어져 있었다.
바다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눈 내리는 바다가 노을 지는 하늘만큼 아름답기를 멘쉬는 희망했다.
달에서, 버그송의 모습은 찾아지지 않았다. 달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일 수 있을지 멘쉬는 궁금했다. 버그송이 달에서 흔들어 주는 손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에서 손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둠이 달의 뒤로 까마득히 밀려와 있었다. 어둠에 별들은 박혀 있었고, 또 박혀 있지 않았다. 별이 왜 거기에 있는 것인지, 또 왜 거기에 없는 것인지, 유난히 반짝이는 별은 왜 그렇게 특별히 크고 특별히 밝은 것인지 멘쉬는 알고 싶었다. 사막을 걷고 있는 자신의 이유는 분명했지만 사막을 걷지 않는 이들의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사막은 별이 없는 어둠 같았다.
버그송이 어둠 속으로 뛰어오른 후 몇 개의 달이 뜨고 몇 개의 달이 사막의 모래 아래로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멘쉬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동굴의 그림에서 빛나던 별은 오늘도 그 하늘에 있었다. 그 별을 따라 걸어온 멘쉬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사막은 발자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막 어디에나 살고 있는 바람은 모든 발자국을 모래로 메워 버렸다. 사막에서, 존재자가 자신의 존재의 흔적을 새기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마음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아무도 자신이 지나온 길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멘쉬는 생각했다. 나아갈 길도 금새 지나온 길이 되고 말 것이었다.
멘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함께 걸었던 시절에는 없었던 자유가 혼자 걸었던 시간에는 있었다. 자유로운 자의 발자국은 자기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임을 멘쉬는 알았다.
“낙타는 역시 포기를 모르는 동물이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섬찟하여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멘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여기라네, 친구.”
이번에도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원래의 위치로 고개를 돌린 멘쉬의 앞에 몸집이 절반으로 줄어든 달의 얼굴이 선명했다.
‘후두두두둑.’
새 한 마리가 어둠 아래에서 튀어올라 달의 앞으로 몸을 드러냈다. 새의 몸은 붉었다. 새는 멘쉬와 달 사이의 공중에 떠서 날갯짓했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나?”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커진 멘쉬의 눈 앞에서 새는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여 높이 솟구친 뒤 달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원을 한 바퀴 그린 후 멘쉬의 발치 아래 내려앉았다.
“우리 일행 뒤를 따라오던 그 새가 당신 맞나요?
“그렇다네, 멘쉬.”
달을 향하여 무릎을 구부리고 엎드린 낙타 앞에서 온몸으로 달빛을 받으며 새는 말했다.
“자네가 미지의 여행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자네를 죽 지켜보았지.”
“예? 왜 저를 지켜봤나요?”
“지켜보는 것이 새의 일이니까.”
멘쉬는 새의 눈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붉은 새의 눈동자는 붉지 않았다. 새의 눈은 웃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가 아무 생각없이 지켜본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게. 우리는 귀도 밝으니까 말이야. 자네처럼 좋은 질문들을 던지는 낙타는 정말 오랜만이었거든. 그래서 자네가 사막을 무사히 건널 때까지만 지켜볼 생각으로 따라왔지.”
“네?”
“그래, 그렇다네. 저기 저 언덕만 넘으면 사막의 끝이지. 자네는 사막을 넘은 것이라네.”
새가 가리키는 언덕을 바라보는 멘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멘쉬는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네도 눈물이 나는 모양이군. 왜 질문하는 낙타들은 끝이라는 단어에 감정이 북받치는지 몰라.”
“당신은…… 플라통을 아나요?”
“그럼, 바로 이 자리에서 플라통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플라통은 바다를 보았나요? 눈 내리는 바다를 만났나요?”
“그럼, 보았지. 보았고 말고. 기억하라고. 새는 생각보다 높이 날고 멀리 보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야.”
“저 언덕을 넘으면 플라통을 만날 수 있을까요?”
새는 펄쩍 뛰어올라 멘쉬의 등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글쎄. 낙타의 일은 낙타의 것이겠지. 새가 낙타의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당신은 이제 어디로 가나요? 당신에게도 끝이 있나요?”
“역시 내가 낙타 보는 눈은 있다니까. 이번에도 아주 좋은 질문이었어 멘쉬. 하지만 내가 자네를 위해 그 질문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지. 자네는 이렇게 물었어야 해. '당신은 이제 어디론가 가겠죠? 당신의 날개에도 끝이 있나요?' 이렇게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멘쉬. 모든 것은 어디론가 가기 마련이야.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이 모래알 하나하나도 어디에선가 왔고 어디론가 떠나게 되어 있지. 자네도 나도 예외가 아니야.”
멘쉬는 혹시라도 바람에 새의 말을 빼앗기기라도 할까 봐 귀를 쫑긋 세웠다.
“나에게는 끝이 없어. 마찬가지로 자네에게도 끝은 없지. 다만 나의 날개와 자네의 발에만 끝이 있을 뿐이라네. 내가 나의 날개를 접고 자네가 자네의 발을 꺾는 때가 날개의 끝이고 발의 끝이야. 하지만 그게 나와 자네의 끝은 아니지. 그러니 친구여. 눈물을 닦고 저 언덕 너머로 걸음을 옮겨 보게. 사막의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한 저곳으로 말이야. 이제 나도 자네와 작별을 고해야겠군.”
새는 멘쉬의 귀에 입맞춤을 하고 날아올랐다. 멘쉬의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서 멘쉬의 앞으로 돌아온 새에게 멘쉬가 말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이름을 묻지도 못했어요.”
이 말에 새가 웃으며 날개를 푸덕거리자 깃털 하나가 빠져 바람을 타고 날렸다. 새는 공중제비를 돌아 깃털을 잎에 물고 멘쉬의 앞에 내려왔다. 입에 물었던 깃털을 멘쉬의 왼쪽 발 위에 얹어 놓으며 새가 말했다.
“새에게는 원래 이름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네. 그저 자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그만이지. 이것은 우리가 만났다는 작은 징표일세. 낙타들에게 가끔은 눈에 보이는 게 필요한 법이니까.”
새가 깃털을 향해 살짝 입바람을 불자 멘쉬의 왼쪽 발이 빨갛게 물들었다.
“혹시 작별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얘기하라고. 새는 상처 받지 않는 존재이니까 말이야.”
멘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녜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당신을 기억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아니야, 멘쉬. 나를 기억할 필요는 없네. 나는 자네가 다만 자네의 발을 믿기를 바란다네.”
말을 마친 새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멘쉬에게서 멀어져 갔다. 새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잊지 말게. 새는 낙타를 사랑한다네, 친구. 잘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