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찾아 떠난 낙타 - 6. 운명

by 오종호

왼발 주위의 붉은 털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붉은 새가 말한 언덕을 오르는 동안 멘쉬는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설렘을 느꼈다. 심장 박동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세상에 울려 퍼져 나가는 듯했다.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멘쉬는 심호흡을 했다. 콧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바람에서 짠 맛이 났다. 한 걸음 한 걸음 멘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사막의 끝이자 시작에서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자 끝을 맞이하는 순간을 멘쉬는 최대한 느리게 만끽하고 싶었다.




마침내 멘쉬는 언덕 위에 올랐다. 언덕 정상을 향해 최후의 걸음을 옮기는 순간 멘쉬는 눈을 감았다. 눈 앞에 그동안 상상했던 하늘을 닮은 물의 사막이 파랗게 펼쳐져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눈을 감은 멘쉬의 귀에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람이 사막의 모래를 훑고 다니는 소리와 닮았지만 그렇게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다. 그것은 사람들이 낙타들의 물통에 물을 채울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그렇게 경망스럽지 않았다. 소리는 느리게 밀려가고 밀려왔다.


마침내 멘쉬는 눈을 떴다.




언덕 정상부터 곧장 풀밭이 시작되었다. 언덕의 이편과 저편의 풍경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인지…… 멘쉬는 꿈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만 같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멘쉬의 발을 움직인 것은 바다였다. 그것은 상상 속에서 떠올랐던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사막은 모래의 바다일 수 있지만 바다는 물의 사막일 수 없다고 멘쉬는 생각했다. 바다는 땅의 하늘이었다. 멘쉬는 그 하늘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풀밭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에 물체가 아른거렸다. 멘쉬는 눈을 지그시 뜨며 물체의 실체를 가늠했다. 그것은 낙타였다. 낙타는 느릿느릿 풀을 뜯고 있었다. 멘쉬는 그가 플라통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제 시간에 왔구나, 멘쉬.”


멘쉬가 다가가자 풀 뜯기를 멈추고 붉은 수염의 낙타가 말했다.


“저를 아시나요? 당신은 플라통인가요?”


붉은 수염의 낙타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럼 그럼. 내가 달리 누구겠느냐?”


플라통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멘쉬의 두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자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많은 낙타로구나. 그렇지, 그래. 아주 잘 되었어. 껄껄껄.”




플라통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젖히며 호탕하게 웃었다.


“시장할 텐데 일단 좀 먹고 푹 쉬거라. 아직 그만한 여유는 있단다.”


이렇게 말하고 플라통이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던 멘쉬의 뱃속이 요동을 쳤다. 급격히 허기가 밀려왔다. 석 달 간의 사막 횡단이었다. 마틴이 남겨 놓은 물을 마신 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였다. 왜 갑자기 식욕이 돋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생각을 뒤로 하고 멘쉬는 정신없이 풀을 뜯어 먹었다. 싱싱한 풀은 향긋하고 달콤했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맛이었다.


“저쪽에 집이 보이지? 그곳에서 쉬면 된단다. 집 옆으로 샘물이 흐르고 있으니 마시고 길게 자거라.”


입가에 풀을 묻히며 만찬을 즐기는 멘쉬를 인자하게 바라보며 플라통이 말했다. 바다 끝을 향해 해가 성큼 다가서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는 플라통의 뒷모습이 멋있다고 멘쉬는 생각했다.




멘쉬는 기어코 잠의 끝에 도달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낙타처럼 잤다. 잠은 사막에서의 일상과 사막의 여정을 모조리 꿈으로 보여 주고서야 비로소 멘쉬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집 밖으로 나가자 한밤중이었다. 별빛이 내려앉은 바다를 보며 플라통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낙타에게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게.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낙타의 표정으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리 와서 옆 의자에 앉도록 하게.”


멘쉬는 자신이 좀 전까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플라통 옆의 빈 흔들의자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대고 앉은 멘쉬는 이내 사람들이 오아시스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쉬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안락하고 따뜻했다.




“언더백의 아들 오버백이 안부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 그래.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내, 고맙게 오버백의 마음을 받겠네.”

“예, 오버백이 기뻐할 것입니다.”


파도는 쉴새 없이 별빛을 모았다가 어디론가 실어 나르고 있었다. 붉은 새의 말처럼 모든 것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멘쉬야.”

“예, 플라통.”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예.”

“어째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버백이 알려준 대로 유난히 밝은 별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도 만나고 플라통님도 만나고 눈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보렴.”


플라통의 말에 멘쉬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시선을 던졌다.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이 오늘따라 각별히 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별이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어, 어, 플라통님?”


덜컥 겁이 난 멘쉬가 안절부절하자 플라통이 멘쉬의 등에 왼 앞발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다. 겁낼 것 없다.”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은 하늘에서 내려와 멘쉬와 플라통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버그송이 양팔을 벌려 가늠했던 달의 크기와 비슷한 신비로운 푸른 빛을 내는 아름다운 구체였다.


“정말 아름다워요, 플라통님.”




“그래, 그렇고 말고. 너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아름답다는 말 밖엔 떠오르지 않았어요.”

“멘쉬야, 이제 때가 되었으니 내가 들려주는 말을 잘 듣고 행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예.”




“너는 원래 이 별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 죽었다.”

“예?”


플라통이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였다.


“너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외로운 법이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니까. 나는 오랫동안 너를 지켜보았다. 네가 품은 질문들에 네가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 너는 눈물이 많았다. 이 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해 너는 많이도 슬퍼했지. 그 슬픔을 없앨 해답을 찾기 위해 너는 철학자가 되었어. 참 무던히도 애썼지. 하지만 존재의 무력함을 느낀 너는 어느 날 스스로 세상과의 인연을 끝냈단다. 이 별에서 그렇게 생을 마감한 사람은 모두 이곳에 낙타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다.”


멘쉬는 미동도 하지 않고 플라통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네가 처음은 아니다. 나는 호기심을 품고 온 여러 낙타들에게 기회를 주었어. 모두 이 푸른 별에서 온 친구들이고 내가 오랫동안 지켜봐 온 친구들이지. 그 중에 누구도 사막을 넘지 않았을 뿐. 그래서 동시에 네가 처음인 셈이다. 멘쉬, 너는 아주 잘해 주었다.”

“이게 다 사실이라구요? 저는 이 별에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데요.”

“잠시 후 내가 떠나면 기억이 날 게다.”

“떠나신다구요?”

“그래. 네가 여기에 이렇게 왔으니 나의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가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다. 더는 어디론가 갈 필요 없는 곳으로 나는 완전히 소멸된다. 이것의 의미를 너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멘쉬야, 내가 떠나면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눈도 보게 될 게야. 눈이 내리는 한 그곳엔 희망이 남아 있게 될 게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곳에서 부디 자유로워지거라. 잘 있거라.”




말을 마친 플라통의 눈빛은 한없이 인자했고 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멘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플라통의 몸은 서서히 무지개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오아시스에 비가 내리던 날에 보았던 그 빛깔이었다.


“플라통님, 플라통님!”


플라통을 휘감았던 빛은 일순간 사라져 멘쉬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