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찾아 떠난 낙타 - 7. 눈(final)

by 오종호

그러자 푸른 별에서 한 줄기 빛이 튀어나와 멘쉬의 이마에 닿았다. 빛줄기를 타고 멘쉬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푸른 별에서의 모든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이 멘쉬의 가슴에 되살아났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았던 날의 가로등 불빛, 친구들과의 파티, 오염된 도시의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바닥을 드러낸 강물과 쓰레기들, 산불, 황사, 신음하는 동물들,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간의 죽고 죽이는 전쟁, 유서를 작성하는 자신의 모습…… 멘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은 이 푸른 별에서 멘쉬가 오랫동안 멈추지 못했던 그 눈물과 같았지만 또한 같지 않았다.


멘쉬의 눈물은 구체의 푸른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별 안으로 눈이 되어 떨어졌다. 푸른 별 속의 사람들은 눈을 맞으며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다. 동물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댔다.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반려견 헤겔(Hegel)과 눈밭을 뛰어다니며 뒹굴던 기억도 떠올랐다. 헤겔에 대한 그리움이 일순간 파도처럼 가슴에 밀어닥쳤다.




멘쉬는 마침내 자신이 누구였는지 온전히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울 줄 아는 인간이었다.


멘쉬는 알았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울기를 포기했던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라 다시 사랑하는 자로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사막의 별로는 그 누구도 낙타로 오지 않아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영원히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눈물은 더 이상 자기 가슴속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눈이 내렸던 겨울이 사라져 다시는 눈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울먹이던 TV 속 어느 과학자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는 플라통이었다.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맙구나, 멘쉬.”


허공에서 플라통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는 분노했고 동시에 절망했다. 그 분노와 절망이 너무도 커서 나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어느 호기심 많은 낙타가 듣고 따라올 이야기를 사막에 뿌려 놓는 것 외엔. 와 줘서 고맙다. 안녕, 영원히.”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 속으로 함박눈이 쏟아졌다. 별에 겨울은 돌아왔다. 만나고 헤어지는 연인들 머리카락 위에도, 열기에 말라 비틀어져 가는 나뭇잎 위에도,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과 잿더미로 변한 민둥산 위에도 별처럼 눈은 내릴 것이었다.




멘쉬의 몸이 별처럼 푸른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멘쉬는 젊은 시절의 싱싱한 인간으로 돌아간 자신의 몸을 어루만져 보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따뜻한 몸이었고 그 안에는 붉은 피를 따라 다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빨간색 왼발을 보고 멘쉬는 웃음이 났다. 새는 죽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사막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멘쉬는 자주 울고 자주 웃으며 지내기로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