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당신이 보는 것은 누구인가?
나를 아는 인간들은 내가 바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인간들은 내가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를 모르는 인간들은 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모르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나를 알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 없는 인간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곳은 감옥이다. 나는 감옥에서 가능한 한 적게 먹으며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인생에서 감옥을 경험하지 못하는 자는 불쌍하다. 다시 태어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체를 가로막는 사각의 벽과 벽 사이에서 오로지 자신을 유일한 세계 삼아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영원히 깨우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에 맞먹는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벽에 짓눌려 죽기 마련이다. 세계는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벽들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 어쩌면 당신은 그 충격으로 정신 줄을 놓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당신은 너무 늦기 전에 수감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나에게 이곳은 또한 동굴이다. 나는 사방의 벽에서 배어 나오는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눈을 감는 순간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차단할 수 있다. 나는 온몸으로 전후좌우의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인생에서 동굴을 만나지 못하는 인간은 가련하다. 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우리에 의해서 신이라고 불려 온 자의 설계된 놀이터라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면 인생은 무의미하다. 태엽을 감으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추다 멈추는 꼭두각시 인형. 당신에게 인생이란 춤추는 시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세계를 넘어서려는 자는 동굴과 만나야 한다. 벽과 벽 사이에 존재하는 광활한 시공을 느껴 봐야 한다. 그곳에 흩어져 있는 신의 흔적을 따라 걸어가 봐야 한다. 그대가 누구인지, 왜 이 세계에서 식량과 술을 축내며 안 죽고 있는 것인지 알게 될 테니까.
나를 아는 인간들은 내가 바쁠 것이라 생각하지만 분주함 속 자신의 외로움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배운 것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절묘하게 바빠지는 방법들뿐이다. 나를 잘 아는 인간들은 내가 심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고독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고독을 부러워하거나 고독을 흉내 내는 일은 애처로운 일이다. 그런 고독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차라리 나를 모르는 그대들이 낫다. 나는 그대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므로 나는 그대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그렇다고 그대들이 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대들은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대들을 위해 신과 만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그대들 중에서도 감옥과 동굴을 가지려는 자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대들에게 내가 주고 있는 것은 나를 알 기회가 아니다. 마침내 그대들이 누구인지 알 기회일 뿐이다.
내가 이곳에 있었던 까닭은 신의 설계 때문이다. 나는 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지만 신이 무슨 짓을 해왔는지는 잘 알았다. 신의 실체를 감지한 나에게 남은 것은 신의 의도를 알아내는 것과 신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의도를 이 세계에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 따위 세계를 설계하고 그것의 일부로서 나를 끼워 넣었는지 묻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나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졌다. 숙명이라는 단어를 그대들은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감옥과 동굴 모두를 통과하지 않은 자들은 숙명을 이해할 수 없다.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당신은 우선 충분히 현명한 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어리석다는 사실과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인테리어 소품처럼 장식된 책들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많이 읽었는지 따위로 인정을 회피하려 들지 말라. 신은 당신의 머릿속에 담긴 눈곱만치의 쓰레기에 관심이 없다. 당신이 인정할 때 비로소 신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과 대면할 기회를 선사할 수도 있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지만.
신에게 나의 숙명을 따지는 것에 의미가 있을 리 없다. 신은 가치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들었다는 신의 목소리 중 대부분은 가짜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보다 앞서 신으로부터 답을 들은 인간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책보다 앞서 신과의 면담을 기록한 책이 나오지 않았을 리 없을 테니까.
신이 나에게 만남을 제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 세계 도처에 널려 있는 신의 흔적을 볼 수 있게 된 나에게 그것을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신은 인간들이 외면하는 서점의 구석 서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갈피와 자작나무 가득한 숲의 오솔길 등에 불쑥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그것은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풀과 나무 사이에서 오직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로 전해졌다. 나는 신과 만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다만 기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