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계 - 2. 세계

by 오종호

나는 주로 밤 산책 시간을 이용해 신에게 말을 걸었다. 신은 어떤 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신이 나의 말을 듣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한 뒷골목을 통과해 횡단보도를 건너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산책로로 접어들면 도시의 소음은 잦아들고 풍경은 싱그러웠다.


인간들은 저마다 여유롭게 거닐었다. 두 손을 잡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노년 부부, 웃음꽃이 활짝 핀 젊은 연인들, 그리고 이곳저곳 냄새를 맡느라 정신 없는 반려견들. 나는 과거 속으로 떠나 보낸 나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모습들이 사랑스러웠다. 지구 위의 인간과 동물은 그렇게 평화롭게 살다 떠나면 족한 존재였다. 그것은 일상이라는 나뭇가지들에 핀 행복이라는 꽃들이었다.


가끔은 길가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 네 마리를 보았다. 지나가는 인간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고양이들에게 몸통을 고정시킨 중년 여자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번갈아 불러가며 많이 먹으라고 독려했다. 나는 굶주린 고양이들이 만찬을 즐기는 표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피어 있을 미소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배고픈 생명의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것만큼 가슴 따뜻한 일이 있으랴. 고양이들의 무분별한 증가로 인한 도시 생태계 교란을 운운하며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인간들을 욕하고 고양이들을 학대하는 인간들은 인류가 80억이 넘도록 무분별하게 증가해 오는 동안 생겨난 여러 부작용들 중의 하나다. 그런 자들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기껏해야 굶주린 도시 뒷골목의 고양이들이 이 세상을 어찌하겠는가? 누군가는 그들을 버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보살피고 누군가는 그런 그들과 고양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괴롭힌다. 어느 인간이 인간이라고 불려야 마땅한가?


그대들은 명심해야 한다. 고양이는 한낱 고양이가 아니다.




아파트 산책로를 벗어나면 화려한 도시의 중심가가 이어졌다. 신이 나를 도시에 붙잡아 두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들에게 버려진 고양이들과 인간들에게 잊혀진 인간들은 도시를 유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모든 유랑자는 도심 고층 빌딩들의 그림자 안으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서로 만난다. 고독한 영혼들은 서로의 뒤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반듯한 직선의 도로와 건물들에는 인간들의 의도가 담겨 있다. 편리함과 안락함을 사고 싶다는 인간들의 욕망에 대한 비밀스러운 자극이 그 각진 세련됨 속에 숨어 있다. 번화가를 걸을 때마다 나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시계 바늘을 연상한다.


시계 안에 갇힌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은 시계에 갇히지 않는다. 갇혀 있는 것은 시계라는 세계 안에서 순환하는 시계 바늘이다. 시계 바늘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시계에 의해 존재한다. 시계 바늘은 인식되지 않는다. 다만 설계되고 조립될 뿐이다.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의 의도에 의해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도시는 하나의 시계다. 신의 의도대로 사는 인간들은 도시를 만들 수밖에 없다.




나는 휘어진다. 각진 도시의 거리를 거닐며 나는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기울어진 그림자 속에서 휘어진다. 휘어질 줄 안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세계 안에서는 어떤 것도 직선이 아니다. 직선을 보는 인간은 결국 시간에 녹아 없어진다. 그러니 신을 만날 수 없다. 신은 꼭두각시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머리가 아플 때면 가끔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과 두통의 화학적 상관 관계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다. 그걸 알지 않아도 두통은 때로 잦아 들었고 때로는 심해졌다. 두통이 맥주에 녹아 없어지길 바라는 대신 나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인간은 안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어도 키보드는 피아노 건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을 감고 마음에 손을 맡기면 손가락은 자판 위를 물 찬 제비처럼 옮겨 다닌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그녀의 눈꺼풀에 입맞춤 하듯 부드럽게.


나는 신이 술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술 맛을 모르는 신이라면 세계를 이렇게 만들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술을 끊기로 했지만 술 없이 인간들은 만나지지 않았다. 나는 술을 다시 이어 붙였다.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 쓸데 없는 말은 술보다 인간을 더욱 망가뜨린다. 내가 침묵하면 세상도 침묵한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헛소리들을 늘어놓는 TV속 허접한 인간들에게 눈과 귀를 내어 주고 시시덕거리는 인간들만큼 역겨운 것도 없다. 남의 잡소리를 들으며 썩어가는 가련한 인간들. 침묵 속에서 고독은 희열이 되고 그 희열 속에서 신의 흔적은 발견된다.


마침내 신은 나에게 지도를 건넸다. 신은 더 이상 희미함 속에 숨어 있기를 중단했다. 자신의 코드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에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와 자신과의 만남조차 신은 오래 전에 나의 시간표에 새겨 두었다.


어느 일요일 새벽, 나는 간밤에 꾸린 가방을 메고 산행에 나섰다. 내가 그 산을 굳이 그대들에게 알리지 않는 이유는 신의 뜻이다. 그대들 역시 그대들 만의 방식으로 신으로부터 자격을 인정 받는다면 어느 날 신의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