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산의 입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갈 데라고는 산 밖에 없다는 듯 이미 산에서 내려오는 인간들도 많았다. 두툼한 겨울 등산복으로 중무장한 남녀들이 내 뒤에서 수다를 떨며 따라오고 있었다.
며칠 전 꿈속에서 신은 폭포를 보여 주었다. 그 폭포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나와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함께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었으니까.
신은 그대들의 꿈을 매개로 사용한다. 꿈속 이미지에 담겨 있는 신의 메시지를 알아채기 위해서 그대들은 공부해야 하고 수양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대들만의 감옥과 동굴을 갖도록 하라.
멀리서 폭포가 보였다. 나는 어떤 식으로 신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했지만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만나게 될 인간은 어차피 만나는 법이고 헤어질 인간과는 어차피 헤어지기 마련이다. 신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신이 더 정확하다. 자신이 짜놓은 시간표를 신이 어기지는 않을 테니까.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취해 뻗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차피 정해진 만남에 대해 미리 초조해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그대들처럼 평범하지 않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여름 장마처럼 퍼붓는 장대비를 반길 인간은 없다. 제아무리 산을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인간들은 저마다 투덜거리며 재빨리 나무들 아래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잎을 떨군 겨울 나무가 비를 막아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함박눈을 기대하며 산을 찾은 인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언제나 재빨리 방법을 찾는 존재들이다. 젖은 몸을 말릴 곳은 산 아래에 널려 있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따끈한 국물과 술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다시 왁자지껄하며 아래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래에는 비를 반기는 술집 주인들이 이미 환한 미소로 줄지어 나와 있을 것이었다. 신은 그렇게 인간들을 나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신은 어디에서든 나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신과 나의 만남에 적당한 분위기가 차려지는 것이 나쁠 리 없었다.
나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청량감을 느꼈다. 비는 언제나 하늘에서 땅으로 온다. 이 세계 안의 모든 것은 그렇게 왔다. 이제 나는 신으로부터 그 이유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