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아래에 다다랐다. 산이 품은 비를 아래로 바삐 쏟아 부으며 폭포는 굉음을 내질렀다. 물줄기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떨어진 물은 폭포를 기어 올라오지 않을 것이듯 그녀와의 시간은 내 인생 위로 거슬러 오지 않을 것이었다.
빗줄기와 빗줄기는 서로의 살을 비빌 듯이 간격을 좁혔다. 모자 속에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산의 형체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아침에 잠시 찾아왔던 빛은 거의 소멸되어 있었다.
어둠을 가르며 떨어지던 폭포수가 두 갈래로 갈라지며 입구가 생겼다. 그곳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웅덩이에 빠지지 않고 그곳까지 나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폭포가 있는 곳까지 벼랑 아래로 위태롭게 이어진 미끄러운 바위들을 조심스레 밟으며 접근해 갔다.
이곳으로 나를 부른 신이 내가 죽기를 바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나아가 입구 앞에 이르렀다. 망설이지 않고 나는 어둠 속으로 발을 옮겼다. 뒤에서 폭포수가 입구를 막으며 떨어졌다.
거의 동시에 폭포 안이 환해졌다. 오른쪽에 서 있는 가로등이 켜진 것이었다. 동굴 안에서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곳의 고요는 나의 침묵을 닮아 있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치자 길이 왼쪽으로 휘어졌다. 길을 따라가자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진 둥그런 방이 나왔다. 동그랗다는 점만 빼면 방은 나의 감옥을 닮아 있었다.
남자 하나가 널찍한 책상 뒤의 의자에 앉아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파란색 책상 위에는 파란색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남자도 파란색 수트를 입고 있었다.
“자, 이리로 앉으세요.”
그가 오른손을 들어 책상 앞에 놓인 파란색 의자를 가리켰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외투를 벗으려 하자 그가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방 마를 겁니다.”
의자는 푹신하고 따뜻했다. 그가 말한 대로 의자에 앉자마자 옷에서 물기가 사라졌고 금새 온기가 회복되었다.
“당신이 신입니까?”
나는 내가 던져야 할 첫 질문다운 물음을 그에게 던졌다.
“아닙니다. 저는 신분확인담당관입니다.”
그는 특유의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두 손바닥을 책상 위에 올려 놓으세요.”
그의 말에 따라 책상 위에 두 손을 갖다 대자 손 주위가 초록색으로 물들더니 책상 위의 램프 빛도 같은 색으로 바뀌었다.
“다 되었습니다. 하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쪽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파란 수트의 남자가 오른손으로 가리킨 방향에 초록색 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숙여 파란색 펜을 들고 파란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따뜻하게 빛나고 있는 문을 향해 다가갔다.
초록색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가 내 등 뒤에서 다시 저절로 닫혔다. 이번에는 온통 초록빛 세상이었다. 실내가 아니라 실외라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정면의 풀밭 끝에 숲이 우거져 있었고 그 위로 파란 하늘과 구름이 떠 있었다. 노란 햇살이 이리저리 부서지는 창공을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폐부 깊숙이 공기를 끌어와 담았다.
“컹컹”
숲에서 개 한 마리가 짖으며 달려 나왔다. 나는 첫 눈에 개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꿈에 그리던 나의 지드(Jid)였다.
“지드, 지드. 너구나. 이 녀석. 하하하하하.”
품 안으로 달려든 지드와 함께 나는 융단 같은 풀밭에 나뒹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아빠, 잘 지냈어?”
지드가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드, 너, 인간 말을 하는 구나?”
“응, 난 이제 원래대로 돌아왔으니까.”
“원래대로 돌아와?”
“응, 모든 개는 이전 생에서 사랑 받지 못했던 인간이었어. 좋은 인간들 만나서 사랑 많이 받으라고 땅에 내려 보내진 것이야. 인간들 역시 개와 함께 살아가며 사랑하는 것의 행복함을 배우라는 신의 뜻이지.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가 사랑 받는 것은 아니잖아? 학대 받고 버려진 개들은 다시 개로 태어나. 사랑 받고 행복하게 살 때까지 개로서의 삶이 반복되지. 난 다행히 아빠 덕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아빠.”
지드는 두 앞발을 내 어깨에 얹었다. 우리는 깊게 포옹했다. 지드의 체취가 코에 밀려들자 가슴이 울컥거렸다.
“사랑해, 아빠. 아빠와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어. 나 너무 보고 싶어 하지 말고 이제부터 아빠도 많이 행복해야 해, 알았지?”
지드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드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 방울이 내 목을 타고 가슴 부위로 흘러내렸다.
“알았다, 지드. 꼭 그리할게. 너도 많이 많이 행복하게 살렴.”
“응, 아빠. 나 인간 되고 나서도 아빠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빠 기억나면 꼭 만나러 갈게. 자, 하이파이브!”
내가 지드에게 가르쳤던 동작이었다. 지드는 두툼한 앞발로 내 손바닥을 힘차게 두드리고는 숲을 향해 뛰어갔다. 젊은 시절 활력 넘치던 지드의 모습 그대로였다. 숲 앞에서 지드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숲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