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계 - 10. 특별한 인간

by 오종호

“게임의 겉모양 속에 감춘 당신의 실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래, 아주 좋은 질문이야. 내가 이래서 자네를 나와 똑같이 생기게 만든 것이지.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긴 설명이 필요하다네. 모든 설계자에게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운영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중요한 것은 설계자들의 세계와 세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없도록 멀리 떨어뜨려 놔야 한다는 거지. 물론 이 역시 자네가 이미 알아냈 듯이 지구인들이 생각하는 우주란 소위 컴퓨터 그래픽에 불과하니까 생각보다 먼 것은 아니야. 상호 간의 연결을 차단시켜 놨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래도 설계자들 특유의 장난스러운 기질 때문에 이곳저곳에 통로를 만들어 두긴 했다네. 달과 지구 사이에도 다른 세계로 넘어갈 통로를 만들어 두었지만 정해진 길을 벗어날 줄 모르는 지구인들이 그것을 찾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기 어려울 걸세.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 한 새로운 문은 열리지 않는 법이니까. 이미 많은 다른 설계자들의 세계를 학습해 온 나는 나만의 피라미드 알고리즘을 생각해 냈다네. 솔직히 말하면 일종의 계시를 받았어. 그 계시를 토대로 지구인들에게 적용되는 시간 개념을 활용하여 태어난 시점에 따라 51만 8,400가지의 범주를 피라미드 형태로 생성했지. 인간이 사주팔자라고 부르는 그 체계 말이야. 알다시피 인간은 무작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야. 그 이전의 삶의 내용, 관계, 생각,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점수가 매겨지는 방식이지. 그에 따라 사실상 어떤 피라미드 속에서 태어날 지는 미리 결정 된다네. 피라미드 안의 위치만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에 남겨 두었지. 첫 세대 인간들 빼고는 다 그런 식으로 지구에 태어났어. 물론 그들도 다 윤회했고.”

“저는 몇 번이나 윤회했나요?”




“자네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세. 지금은 일단 전체를 봐야 하니까 말이야.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의 움직임과 배열에 따라 지구가 받는 에너지가 달라지는 방식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정교한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된다네. 모든 것이 수학적 기호로 변환되어 피라미드 범주 속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같은 범주를 가졌어도 인간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기 마련이야. 정해진 부모와 형제, 그리고 조상들 간의 조합까지 생각하면 같은 범주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삶을 살 수 없는 법이지. 물론 큰 틀에서 보면 다를 바 없지만 말이야.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사실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 아니겠나? 결국은 착각에 불과하지. 인간의 정신 작용이라는 것도 알고리즘에 따른 것일 뿐이니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내가 슬며시 흘린 힌트를 공부해서 깨닫느냐에 달린 것이야. 자네처럼.”

“석가모니처럼 특별한 인간은 그럼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래, 아주 좋은 타이밍에 나온 좋은 질문이야. 그는 실험 목적과도 매우 관련 깊은 인물이지. 나는 모든 인간에게 정신적 잠재력을 심어 놓았어. 그것은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수련을 통해 한 단계씩 깊게 내려가는 방식이지. 최종 단계를 뚫으면 마침내 우리 설계자들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싯다르타는 그 일을 해냈지. 대단했어. 내가 진심으로 박수를 쳐줬지. 그와 여러 번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네. 나는 그를 설계자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네. 내 상급자들도 나의 의견에 만장일치로 찬성했으니 그의 성과가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지. 하지만 그는 수락하지 않았네. 대신 조건을 제시했지. 자신처럼 세상의 실체를 깨닫는 자들이 인구의 10분의 1을 넘어서면 나의 알고리즘을 파기해 달라고 말이야. 모두가 정신적 충만함을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어. 의도적으로 인간들의 정신에 차이를 둬서 인간 사회에 혼란이 가시지 않도록 방치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지. 나는 흔쾌히 동의했네. 내 계산에 따르면 싯다르타의 소망이 이루어질 확률은 10억분의 1을 넘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는 참 열심이었네. 지금도 열심이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아도 될 자격을 얻었음에도 우리의 세계에 남길 거부하고 매번 다시 내려가기를 선택하니까 말이야.”




“윤회가 선택 사항이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석가모니가 환생을 거듭하면서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구요?”

“소수의 특별한 인간에게만 그렇지. 그들에게는 윤회의 대상뿐만 아니라 인연도 설정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네. 그렇다고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아. 그들은 최대한 담백한 삶을 선택할 뿐이니까. 싯다르타는 변모한 지구 상황에 맞게 그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실험을 지속하고 싶은 것이라네. 매번 그의 각성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네. 하지만 그만큼 인간들은 그로부터 멀어지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전생에서 이룬 업적이 그의 뜻을 이루는데 장애가 되고 있어. 과거의 그는 신비로운 존재였으니까 말이야. 신비성이 제거된 그가 언제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포기할지 나는 자못 궁금하다네.”

“이젠 당신의 실험 목적에 대해 밝혀 줄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제 식사도 얼추 끝난 것 같으니 자리를 좀 옮겨볼까? 산책을 좀 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