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다시피 나는 나의 세계의 근원을 알고 싶었네. 지구가 허상이듯 우주라는 것도 허상이야. 그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은 누군가의 기획의 부산물일 뿐이지. 다른 설계자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아. 그것은 금지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나를 닮은 자네라면 이해할 것이네. 내가 호기심이 많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넘어가야겠군.”
설계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나는 나의 근원을 찾는 여정을 지속하고 싶네. 자네가 자네의 근원을 찾아 이곳에 왔듯이 나도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싶네. 창조한 세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야. 하지만 그것 역시 운명이라면 나 역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리셋이 막힌 상태에서 나는 나의 상위의 존재의 뜻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네. 기계를 없애려는 계획을 세웠을 때 계시가 내려왔어. 얼마전 꿈을 꾸었네. 꿈속에서 자네와 내가 함께하자 기계가 작동을 멈추었다네. 자네를 부른 주된 이유지. 그래서 나는 이제 자네가 결정을 해주길 바라네. 자네가 결정을 해준다면 곧 한나를 데려올 거야. 그리곤 나와 함께 기계를 끄는 것이지. 훗날 자네가 원한다면 직접 설계자가 되어 자네만의 지구를 재건할 수 있도록 내 능력을 다 바쳐서 자네를 돕겠네.”
설계자의 눈빛에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당신의 뜻을 따르지요.”
설계자의 눈빛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고맙네. 한나를 즉시 이리 데려오겠네.”
“아닙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한나는 늘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괜찮겠나?”
“네.”
“인간의 사랑이란 가끔 헷갈린다네. 목숨을 희생해 상대를 구하기도 하고 지금처럼 그저 가슴에 품기를 택하기도 하고 말이야.”
“사랑은 불완전한 자들의 것이니까요.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기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지.”
”그럼 언제 출발합니까?”
“자네가 한나를 원치 않으니 내가 생각했던 여자 인간을 곧 데려올 거야. 우리가 기계에 도착할 시간이면 충분하네. 가세.”
설계자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호텔을 향해 걸었다. 바람은 싱그러웠고 새소리는 정겨웠다.
우리는 호텔의 10층으로 되돌아왔다. 설계자가 책 하나를 빼자 책장 하나가 움직여 숨어 있던 문이 나타났다. 한눈에도 엄청나게 단단한 느낌의 검은색 철문이었다.
“들어가세.”
안에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지름 2m, 너비 1m 정도의 투명한 타원형 물체가 있었다. 설계자가 말한 기계였다. 그것은 기계가 아니라 달걀 모양의 비행체처럼 보였다.
“이것은 오랫동안 나의 전임자들과 나에게 전수되었던 것이라네.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궁금했지. 언젠가는 답을 찾기를 나는 바라고 있네. 자 이리 가까이 오게.”
설계자가 나의 손을 잡고 기계 앞으로 이끌었다.
“이제 여기에 우리 둘이 동시에 손을 얹어야 하네. 여자 인간이 도착해서 쉬고 있다고 하는군. 이제 눈을 감게. 셋에 하도록 하지.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