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자네가 나, 나의 설계자였단 말인가?”
설계자는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의 그런 얼굴을 바라보기가 편치 않았다.
“내가 아니라 내 가슴속에 있었던 한나였겠지요.”
설계자의 몸이 흩어져 내게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한나는 언제나 내 가슴속에 있었다.
기계가 내 몸속에 새겨 놓은 한나의 정보가 한때 나였던 설계자의 정보를 빨아들였다. 한나는 설계자의 설계자였다. 설계자는 소멸되었으나 자신의 근원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세계가 위험해 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나 자신이 창조했다고 믿었던 세계와 그 안의 생명들의 소멸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자는 최후의 행운을 누렸다. 호기심 많은 존재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보다 큰 행운은 없으니까.
신을 찾던 설계자는 신을 찾던 나를 부를 운명이었다. 그 운명 역시 한나가 설계해 두었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한나가 원하는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정해진 미래는 없다. 미래를 아는 자는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 속에서 이제 지구 안의 삶만이 실존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나를 찾아가 마음을 고백하기로 다짐했다. 조급하지 않게 다시 한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 있는 남자로 성장하고 성숙해 갈 것이다. 나는 성공하여 많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 땅에서 나는 한나와 함께 사랑하며 살 것이다.
폭포 밖으로 나오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들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그대들의 꿈속에 메시지를 숨겨 놓을 신을 내가 사라지게 했으니. 부디 나의 사과를 받아주길.
그리고 이제 신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그대들이 원하는 인생을 설계하고 그 설계대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곳에서의 일은 이제 온전히 그대들과 나의 것이 되었다. 그대들이 믿든 믿지 않든 신은 이제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대들은 나를 모르니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 나는 다만 그대들도 나만큼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생전 처음 눈을 만난 낙타처럼 나는 흥겹게 산을 내려가고 있다. 내 안에 그대들의 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 무지와 무관심이 나를 기쁘게 할 것이다.
나는 한나를 만나러 가고 있다. 나는 과거의 한나도 아니고 미래의 한나도 아닌 지금의 한나를 사랑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할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도, 나를 경멸하는 눈빛도, 모두 사랑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지드는 무사히 환생에 성공했을까? 나는 어느 날 사람이 된 지드가 나를 찾아올 날을 기다릴 것이다. 정말이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갑자기 지구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서 어느 하나가 나의 가슴속에 와서 박혔다. 나는 그 아이가 사람으로 태어난 지드임을 단박에 알았다. 나는 신이 된 것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