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IV

by 오종호

그렇게 또 삼 년이 지났지만 원래 몇 살이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몇 살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개는 그 사이에 까끌까끌 한 흰 서리가 새하얗게 내려앉은 편재 스님의 곁에서 여전히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그 날은 일주일 째 이어진 유명 TV 다큐 프로그램의 마지막 녹화가 있는 날이어서 더욱 많은 신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사방을 밝힌 조명들로 대낮처럼 밝은 가운데 낭랑한 독경소리만이 경내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출자가 컷을 외치려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틀어 막 입술을 벌리려고 할 찰나 밖에서 나이 든 여인이 뛰어들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독구야, 독구야, 엄마 왔다. 어디 있니, 독구야?”


연출자가 입을 벌린 채 돌아보는 것과 때를 맞춰 편재 스님과 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육 년 전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개와의 인연을 끊고 사라졌던 구 여신도가 애타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독구야, 아이고 우리 독구. 엄마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너 여기 있었구나. 여기 있는지도 모르고 그 동안 너를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아이구, 내 새끼 독구야, 독구야.”


어차피 녹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이들이 잔뜩 섞여 있던 탓에 사람들은 이 뜻밖의 상황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스님! 이보시오, 스님. 내 독구 썩 돌려주시오. 아무리 하나님이 좋아서 떠났다고 해도 그렇지 남의 개를 데리고 있으면서 알려주지도 않고 그러기요? 썩 돌려주시오. 여보시오, 사람네들. 저기 있는 저 개가 이 사람 개랍니다. 내가 저 개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오. 거기 안쪽에 있는 사람들 내 독구 좀 이리 데려와 주시오.”


여인은 목에 핏대를 잔뜩 세우고 목청을 있는 힘껏 뽑아 앙칼지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워낙 표독스러운 기운이 넘쳐서 그런지 아무도 뭐라고 말을 건네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팡이를 든 허리가 잔뜩 굽은 한 노인이 여인 앞으로 다가오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이 여자 말이 맞소. 내가 육 년 전에 이 암자에서 삼 개월간 묵어간 적이 있소만 그때 이 여인이 개를 찾겠다고 날이면 날마다 와서 울어대는 것이 아니겠소. 분명 이 절에 왔다가 찾질 못했으니 여기 어딘가 있을 거라고 말이오. 난 그때 저 스님이 독구라는 저 개를 낮이면 저 창고에 가둬 두었다가 저녁 때면 꺼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더랬소. 아쉽게도 그때 난 묵언수행 중이었던 터라 저 여인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는데 얼마 전 TV를 통해 저 개를 보고 그 개가 틀림없다 싶어 이곳에 오게 된 거요.


저기 저 스님이 갖고 있는 은색 몽둥이를 좀 보시오. 저걸로 저 스님이 독구의 머리통을 어찌나 많이 때리던지, 휴… 지켜보던 내 머리가 다 아픈 듯 하였소이다. 저 편재라는 스님은 위선자요. 제자들도 다 떠나고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하자 저 개를 악랄하게 훈련시켜 돈벌이로 이용한 것이란 말이오. 지난 육 년간 저 시주함에 들어온 돈만해도 얼마나 되겠소. 안 그렇소 여러분?”


여든이 넘어 보이는 얼굴에 허리까지 앞으로 잔뜩 굽어 전체적으로는 그 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이는 노인이 가세하여 쏟아낸 말에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웅성대며 편재 스님의 등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편재 스님은 독경을 멈추었지만 여전히 불상을 향해 척추를 꼿꼿이 편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개도 흐트러짐 없이 원래의 자세를 지속하고 있었다.


“나도 한 마디 합시다.”


쥐색 정장을 입은 삼십 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한 때는 보살이라 불렸던 한 여인과 삼일 동안 고시생의 신분을 가졌던 한 노인의 곁으로 합류하여 사람들을 휘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는 한 때 이 암자에서 수행을 하던 승려였습니다. 무려 오 년 동안 저 스님을 모시고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서러운 세월을 보냈었지요. 그때 함께 수행했던 선배 승려가 그럽디다. 저 스님이 얼마나 악랄한지 죽비도 아니고 알루미늄 배트를 갈아서 저 몽둥이를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그 당시 저 스님은 매 순간 어디에나 있는 존재로 불렸지요. 저를 포함하여 당시 승려들은 매 순간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저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지만 돌아오는 것은 날마다 매 찜질뿐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이곳을 떠났을까요? 몇 년간의 수행이 아까워서라도 사실 떠나기 힘들었겠지요. 제 이빨을 한 번 보십시오. 배가 고파 밤중에 부엌에 가서 찬밥 한 덩이 먹으려다가 저 몽둥이에 맞아 이빨이 다 부러져 버린 것입니다. 세상에 깨우침을 얻으려고 죽을 고생하는 제자가 찬밥 한 술 먹는다고 이빨을 다 때려부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여러분? 제자에게 이렇게 할 정도인데 하물며 남의 개한테 뭔 짓을 못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 사탄을 벌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때는 입맛을 잃었던 무미 스님의 모습이었다. 무료 임플란트 시술권과 함께 잃었던 미각을 되찾은 것이 틀림없었다. 목소리에 힘이 넘치고 있었다.


불당에 들어 앉았던 사람들이나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나 구분 없이 편재 스님을 향해 욕설을 더해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TV프로그램 연출자는 재빨리 잔머리를 굴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돌리며 현장을 화면에 담고 있었다.


시끌시끌하던 경내에 일순간 정적이 감돈 것은 편재 스님이 오른손을 공중으로 휙 들었기 때문이었다. 편재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돌아서자 개도 돌아서 네 발로 바닥을 디디고 섰다. 스님의 오른손엔 환한 조명을 받아 이리저리 빛을 반사하는 은빛 몽둥이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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