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2.중지곤괘重地坤卦>-괘사

하늘의 이치를 이어 받은 땅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라.

by 오종호


-만물을 품어 기르는 땅처럼 우리는 어제의 작고 좁은 나를 날마다 키우고 넓혀 사람과 사물을 포용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坤 元亨利 牝馬之貞 君子有攸往 先迷後得 主利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곤 원형이 빈마지정 군자유유왕 선미후득 주리 서남득붕 동북상붕 안정 길


-곤은 원형이元亨利의 단계를 거쳐 하늘을 따라 정貞한다. 군자가 이 이치에 따라 나아가면 처음에는 헤맬지라도 나중에는 얻는 것이 있게 되니 ('원형이 빈마지정'이란 곧) 이로움을 주관하는 것이다. 서남에서는 벗을 얻고 동북에서는 벗을 잃게 되니, 끝이 편안하고 길할 것이다.



중지곤괘의 괘사입니다. '원형이정'의 단순하고 명쾌한 이치를 말한 중천건괘의 괘사에 비해 매우 깁니다. 땅의 일은 번잡스러운 법이겠지요.


'빈마지정'은 땅이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있음을 명확하게 선언하는 구절입니다. <설괘전> 8장에 '건위마乾爲馬'라고 했습니다. 말은 하늘의 기상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30괘 중화리괘重火離卦에 빈우牝牛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설괘전> 8장에 '곤위우坤爲牛'라고 했습니다. 소는 땅의 우직함을 상징합니다.


牝은 암컷이니 빈마는 암말이라는 뜻입니다. 반대되는 글자는 모牡입니다. <<도덕경>> 55장에 '빈모지합牝牡之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음양의 합'으로 풀이하면 됩니다. 빈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도덕경에서 좀더 힌트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경 6장에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 곡신은 불사하는 것으로 이를 현빈이라고 한다. 현빈의 문을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끝없이 이어져 존재하니 아무리 사용해도 다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곡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골짜기의 텅 비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미묘한 도道를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곡谷은 그 자체로 음陰을 상징합니다. 여성의 음부와 같습니다. 곡신은 도道가 지극한 음의 성질을 띠고 있음을 말합니다. 안으로 깊게 감추어져 있으니 도에 이르는 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겠지요.


현빈은 검은 암컷이란 뜻입니다. 현玄은 흑黑과 다릅니다. 어두움은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 어둠 속에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품고 있습니다. 천자문의 시작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인 이유입니다. 천지현황은 중지곤괘 <문언전>의 '천현이지황天玄而地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곡신을 곧 현빈이라고 했습니다. 현빈은 명리학 알파벳으로 보면 임壬과 동일한 것입니다. 성인聖人이 품고 있는 깊은 진리의 글자입니다. 임壬은 체體는 양이지만 용用은 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의 공간에서는 해월亥月(음력 10월)과 같습니다. 음기로 꽉 차 있는 시기입니다. 그 음기가 곧 임壬입니다. 양기가 아니라 음기가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피워냅니다. 이는 우리가 새겨야 할 매우 소중한 사유입니다. 이를 명리학적으로는 '무갑임戊甲壬' 이라는 지장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곡신과 현빈은 결국 우주공간으로 상징할 수 있는 영원의 세계와 같은 의미가 됩니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그 어딘가에 진리를 품고 있는 미지의 영원계이지요. 그 세계는 양이 상징하는 동動적 팽창과 확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요, 정靜적인 음의 한없는 집중과 사유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땅은 만물을 품어 주는 음의 성정입니다. 양만 추구하는 인류 문명은 음의 가치에 눈을 떠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원형이 빈마지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내려 받은 땅이라는 공간 위의 모든 것은 생장쇠의 과정을 거쳐 하늘의 이치를 따라 영원의 세계로 멸한다는 뜻입니다. 이의 단계 다음에 그냥 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빈마를 따라 정으로 간다는 말은 일종의 강조입니다. 죽음은 땅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관장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땅이 따르는 이 이치는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이 뜻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군자는 그 이치를 깨닫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군자가 지향하는 것은 처음에는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나중에는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군자가 세상에 주는 가장 중요한 이로움이다'와 같이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땅은 하늘을 닮고 군자는 땅 위에 살면서 땅의 이치를 통해 하늘의 이치를 깨우치는 존재입니다. 군자는 본인이 깨우친 하늘의 이치를 땅에 펼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군자를 통해 천지인의 삼원三元이 완성됩니다. 군자는 군자성性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괘사의 '서남득붕 동북상붕 안정 길'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천팔괘도를 보면 서남 방향은 곤괘, 동북 방향은 간괘가 위치한 곳입니다. 대산 선생님은 곤괘를 중심으로 손괘, 리괘, 태괘가 모여 있는 상과 간괘를 중심으로 감괘, 진괘, 건괘가 모여 있는 상을 통해 벗의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곤괘류의 음, 간괘류의 양인 것입니다. 곤괘(☷)는 모친, 손괘(☴)는 장녀, 리괘(☲)는 중녀, 태괘(☱)는 소녀를 의미하지요. 건괘(☰)는 부친, 진괘(☳)는 장남, 감괘(☵)는 중남, 간괘(☶)는 소남을 뜻합니다. 서남의 음괘들이 서로 벗이 되어 함께 사는 상이요, 음이 동북방으로 가면 양을 만나 음의 벗을 잃게 되는 상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설괘전> 11장에서 곤괘를 무리(衆)라고 했습니다. 벗 붕에 무리지음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붕朋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붕의 옛 뜻인 '화폐'를 살리고, 방위상 중앙토에서 서방 금방향을 상생 관계로, 동방 목방향을 상극 관계로 보고 서남으로 가면 재화와 덕망을 얻고 동북으로 가면 그것을 잃는다는 의미로 해석한 책도 있습니다.


일단 후자의 관점에 대해서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선 윗 구절에서 방위는 상징적인 의미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전자에 대해 얘기하면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생극의 관계를 적용하는 것은 생뚱맞습니다. 고전명리학은 생극의 관점 위주로 되어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뿌리박고 살고 있는 토土는 만물을 품고 기르는 터전입니다. 목木도 기르고 금金도 기르는 것입니다.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목이 금이요, 금이 목인 것이지요. 화火와 수水도 토라는 터전 없이는 존재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화와 수가 토를 무대로 작용력을 행사하여 토 위에서 만물이 물형을 바꿔가는 것뿐입니다. 상경이 29괘 중수감괘와 30괘 중화리괘로, 하경이 63괘 수화기제괘와 64괘 화수미제괘로 마무리되는 이유입니다.


생극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의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이 만물의 이로움을 주관하는 하늘의 뜻이고 하늘의 뜻을 이어받는 땅의 작용력입니다. 주역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재화의 관점 역시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주리主利'의 이利는 이로움의 의미입니다. 인간적 관점의 이익이 아닙니다.


대산 선생님의 음과 양, 그리고 벗의 관점이 당연히 타당하다고 봅니다. 앞에서 빈마牝馬의 상징성과 군자가 따르는 이치가 음에 있음을 살펴봤습니다. 음의 여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페미니즘 등으로 확대하는 식의 해석은 금물입니다. 주역에서의 빈牝이나 도덕경에서의 빈은 당대의 정신적 사유 근간에 보편적인 개념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며, 영원한 진리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운동하는 궁극의 음으로서 사유되었음을 이해시켜 줍니다. 그 영원한 진리가 원형이정이라는 하늘의 이치요, 도道인 것입니다.


무한히 수축한 음의 끝에서 양으로 폭발했다(빅뱅)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물리학적 사유의 근원은 바로 그 한 점으로 수렴됩니다. 그 이전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영원한 진리란 그런 것이지요. 분명한 실체를 파악한 것 같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역동적인 끝없음 말입니다.


따라서 음의 정신세계, 음의 가치를 지향할 때 군자는 자신과 같은 류의 벗을 얻게 될 것이요, 그렇지 않을 때 얻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남과 동북이라는 후천팔괘도상의 방위는 음과 양을 구별하기 위한 것일 뿐, 물리적인 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만일 선천팔괘도상의 방위를 사용했다면 서남과 동북이라는 표현은 바뀌었겠지요. 즉, 서남과 동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양의 속성 구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끝이 편안하고 길할 것이다(안정 길)'라는 것은 땅이 빈마를 따라 정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빈마지정)이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으로 편안하듯이, 군자가 '서남득붕 동북상붕'의 자세로 살아갈 때 삶의 마지막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땅이 하늘을 따르는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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