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충실하게, 과정을 밟아라.

by 오종호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군자지지어도야 불성장부달


-흐르는 물이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가 도에 뜻을 두어도 문장을 이루지 않고는 이를 수 없다. - 진심 상(盡心 上)



노자는 도(道)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물의 속성을 차용했습니다. 그가 결코 물 자체를 예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도덕경을 읽으면 명쾌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맹자 역시 물의 이미지를 자주 끌어다 썼습니다. 맹자는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물결을 보라(관수유술 필관기란(觀水有術 必觀其瀾))'고 했습니다. 바다가 일으키는 물결과 연못이 일으키는 그것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가 이 말을 한 배경이 있습니다. 맹자는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다고 여기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다고 여겼다는 얘기를 꺼냅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인간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지, 땅에 다닥다닥 붙은 채 높이 경쟁을 하고 있는 인간이 얼마나 낮은지 알 게 되는 것과 같지요.


그러나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아득한 하늘의 높이와 우주의 광대함에 경외감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반면에 공자의 시선은 땅에만 머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곳은 이리 작고 보잘것없는데 하늘은 얼마나 높고 큰가? 천도(天道)는 저리 무겁고 큰데 인도(人道)는 이리 가볍고 작구나.' 태산 정상에서 땅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공자는 이런 상념에 젖었겠지요.


이 추론의 옳음은 이어지는 맹자의 말을 통해 확인됩니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은 학문을 말하기 어려워한다(관어해자난위수 유어성인지문자난위언(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맹자의 이 말은 태산에 올라 땅과 하늘을 동시에 본 사람과 웅덩이를 차례로 채우며 내려가 바다에 이른 물처럼 공부의 과정을 순서대로 밟고 나아가 마침내 도에 다다른 사람의 그릇을 상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 곳곳에도 많은 웅덩이가 있습니다. 수양과 공부로 그것을 모두 채운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씀씀이가 우리 각자의 마음 밖으로 넘쳐 타인과 세상을 향한 길을 따라 흐르겠지요.


오늘도 채우고 또 채워 너무도 작고 어리석었던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하면서 바다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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