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인간으로 살다 가라.

by 오종호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

막비명야 순수기정 시고지명자 불립호암장지하


-어느 것이든 명 아닌 것이 없으나 정명을 순리대로 수용해야 한다. 이에 명을 아는 사람은 돌담 아래에 서지 않는다. - 진심 상(盡心 上)



앞에서 맹자는 하늘이 인간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가 인내심을 길러 쓰임을 크게 하기 위함이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맹자가 보기에 천명(天命)은 존재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운명 지워진 존재자입니다. 하이데거 이래로 서양 철학자들이 생각해 온 것처럼 우연히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명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명리학)을 공부하여 깨우친 제 입장에서는 맹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명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맹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곡해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도둑이나 강도, 심지어 살인자가 되는 것도 다 운명이라는 말이냐? 그럼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 하늘이 부여한 운명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난단 말인가? 그저 운명에 순응한 셈 아닌가?' 사람들은 맹자에게 따졌을 것입니다.


'인간이 저마다 운명을 부여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하늘은 그것에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른 변화의 여지를 포함해 주었다. 그릇된 짓을 하면서 운명을 핑계 대지 말라. 천명은 곧 정명이다.' '순수기정'에 담긴 맹자의 메시지는 이와 같습니다.


돌로 얼기설기 쌓은 담장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돌담 밑은 위태로운 곳입니다. 피해야 할 장소입니다. 돌담 아래에 서는 않는다는 것은 잘못될 우려가 있는 환경에는 아예 몸을 두지 않음을 은유합니다.


이어지는 말에서 맹자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도에 부합하게 살다 죽는 것이 정명이요, 죄를 짓고 벌을 받아 죽는 것은 정명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성선설의 철학자 맹자에게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하늘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정명의 실천이 가능한 존재자입니다. 맹자는 말합니다. 부와 명예처럼 얻고자 하는 대상이 자신의 밖에 있는 것이라면 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을 수는 없다고. 그 또한 운명적이라고. 반면에 우리 안에 본래 있었으나 우리가 어딘가에 놓아 둔 채 잃어 버린 마음(방심(放心))을 되찾기를 구한다면 반드시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맹자의 말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날마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삶이 운명적이라니. 노력한다고 부자가 될 수 없다니, 출세할 수도 없다니. 거, 맹자형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라고 반항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맹자의 뜻을 바로 새겨야 합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해서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허술한 돌담 아래에 쭈그리고 앉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결국 본성을 되찾을 길은 완전히 막히고, 돌에 깔려 죽듯 죄값을 치르게 됩니다.


카뮈의 말대로 우리의 반항의 대상은 부조리한 현실입니다. 천명이 곧 정명인 한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서 바른 소명을 발견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명에 순응하는 길입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정명을 거스르고 현실의 부조리에 고개 숙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세상의 부조리는 심화되고 인간성은 파괴될 뿐입니다.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정명에 대한 순응은 당당한 인간으로 살다 가겠다는 신념의 실천입니다. 반항과 순응이 함께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도처의 돌담을 무너뜨리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서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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