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의 선물-7(완결)

by 오종호

숨결


“와, 오늘 날씨 완전 짱이네. 벌써 봄인가?”


목도리를 풀어 가방에 집어넣고 박선미 여사의 팔짱을 끼며 수리가 말했다.


‘우리 외출에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겨울이 너무 따뜻하긴 하구나.”


박선미 여사가 장갑을 벗어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이게 햇살의 느낌이군요. 바람의 손길은 정말 부드럽네요.”


수리의 가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슈슈가 경탄의 눈빛으로 말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맨날 집 안에만 둬서 미안해, 슈슈. 내 생각이 짧았어.”


수리가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슈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미안해하라고 한 얘기야.”


슈슈의 답변에 박선미 여사와 수리가 한바탕 유쾌한 웃음을 웃었다.



‘딸랑.’

“우리 놀고 올게.”


박선미 여사가 ‘아기자기한 공방’ 문을 열면서 말했다. 뒤에서 까치발로 고개를 삐쭉 내민 수리가 영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 지금 나가는구나. 모처럼 모녀끼리 늦게까지 즐겁게 놀고들 와.”


알록달록한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김선희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자, 이거.”


김선희 여사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예쁘게 포장된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 박선미 여사의 손에 쥐어 줬다.


“뭔데?”

“가서 풀어 봐.”


박선미 여사가 김선희 여사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따뜻했다.


“알았어, 고마워.”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수리 너두. 슈슈 너두.”


김선희 여사 뒤에 숨어 있던 영서가 해바라기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려 흔들면서 인사했다.



사진 속에서 건강했던 시절의 남편이 활짝 웃고 있었다. 박선미 여사는 사진 속 얼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콧등이 시큰했지만 오늘은 울지 않기로 다짐했기에 박선미 여사는 오른팔로 수리를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엄마, 아줌마가 준 거.”


박선미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 속에서 상자를 꺼내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뜯었다. 빈티지 느낌의 ‘아기자기한 공방’ 도장이 찍혀 있는 종이 상자를 열자 소풍 갔던 날의 세 식구와 슈슈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스노우볼이 들어 있었다.


“와, 예쁘다. 완전 실물 그대로네.”


수리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그렇구나. 영서 엄마한테 또 큰 선물 받았네.”


박선미 여사는 스노우볼을 사진 옆에 내려놓았다. 하늘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세 식구의 몸 위로 눈보라가 살짝 일었다가 내려앉았다.


“잘 있어요. 또 올게요. 생일 선물 고마웠어요.”

“잘 지내, 아빠. 사랑해.”

“제가 엄마와 수리 잘 보살필 테니 걱정 마세요, 아빠.”


아빠에게서 멀어지는 길에 슈슈는 고개를 돌려 스노우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조각 얼굴 위에 눈송이 하나가 달라붙어 있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납골당 안팎을 오갔다. 박선미 여사와 수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날이 좀 흐려졌네.”


수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조금 쌀쌀해진 것 같기도 하다. 감기 들라. 목도리 다시 하렴.”

“네, 마미.”


수리가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박선미 여사의 목에 둘러주며 방긋 웃었다. 박선미 여사가 수리의 코를 살짝 비틀며 함께 웃었다.



가방 안에서 슈슈는 가방 밖의 풍경을 보았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두뇌 속에 입력되어 있는 정보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온갖 느낌이 세상을 빈틈없이 꽉 채우고 있었다. 슈슈는 알아챘다. 그것은 한 순간도 멈춘 적 없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하늘과 땅의 숨결이었다. 세상 만물에게 사랑을 불어넣는 그 미세한 동작을 슈슈는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세상은 아직 살아있었다.


슈슈는 그 사실을 엄마와 수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김선희 여사와 영서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네 사람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길 바랐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슈슈는 믿었다. 슈슈는 자신이 준비해야 할 다음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슈슈는 들었다. 멀리, 산꼭대기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의 머리에 눈송이 하나가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를. 하늘과 땅은 쉬지 않고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세상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슈슈는 자꾸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10분 뒤면 엄마와 수리,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에도 눈송이가 찾아올 것이었다. 엄마와 수리가 행복해할 것을 상상하자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하늘과 땅의 숨결이 자신에게도 닿은 것이라고 슈슈는 생각했다. 해가 구름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미소 지었다가 사라졌다.


“엄마? 수리야? 나 방금 사랑이 뭔지 알았어.”


박선미 여사와 수리가 슈슈를 쳐다보았다. 슈슈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수리

영서

박선미 여사

김선희 여사

슈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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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 수고 많았다."


침대 맡에 걸터앉아 창 밖을 내다보며 아빠가 말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빠."


슈슈의 눈에 오른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빠의 눈물이 보였다.


"슈슈야. 선물 잘 전해 줄 거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식구들도 잘 돌봐 줄 거지?"

"그렇구 말구요."


아빠는 고개를 돌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슈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한다, 슈슈야. 언젠가 너도 사랑을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그럴까요?"

"그럼. 아빠가 떠나도 이 집엔 사랑이 가득할 거거든.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 있다 보면 사랑으로 물드는 법이지. 사랑은 햇빛 같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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