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by 오종호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지인무기 신인무공 성인무명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으며, 성인은 이름이 없다. - 소요유(逍遙遊)



'소요(逍遙)'는 '슬슬 거닐어 돌아다니다', '유(遊)'는 '놀다, 즐기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장자>> 첫 편인 <소요유>는 내용상 '절대 자유의 경지에서 노닐다' 정도의 뉘앙스를 갖습니다. 장자의 호방함이 잘 드러납니다.


곤과 붕에 대해 부연 설명을 마친 장자는 사람의 유형에 대해 얘기합니다. 장자가 보기에 세상이 만든 시스템에 잘 적응하여 벼슬하는 사람들은 메추라기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붕을 비웃었던 매미나 작은 비둘기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이들은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는 부실한 내면의 소유자들일 뿐입니다.


그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는 송영자나 열자 같은 인물들도 뭔가 부족합니다. 송영자는 내면과 외물을 구분하고 후자에 초연할 줄 알았으나, 그 이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날 수 있게 되어 땅의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의지하는 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바람이라는 외부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만 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회오리바람이 일기를 기다려 9만리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붕을 예찬했던 장자는 이 대목에서 바람의 도움조차 필요 없어진 초월적 경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최초의 도약에 필요했던 환경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일단 비행에 들어가면 바람이 없어도 자신의 몸과 날개만으로 하늘에 머무를 수 있어야 진정한 대자유의 향유라는 것입니다.


장자에게도 핵심은 도(道)입니다. 책에서 그것은 '참된 주재자'라고 표현됩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 너머에는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道)와 당연히 일맥상통합니다. 괜히 노장 사상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지요. 장자 후대의 저작이라고 평가되는 외편과 잡편에는 노자의 말이 자주 인용됩니다. 그래서 <<장자>> 중 내편 만을 의미 있게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읽는 재미는 내편이 큽니다. 노자도 그렇지만 장자 역시 도를 깨닫지 못한 인간들의 한계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무상한 인생에서 부와 명예를 좇고 그것의 성취에 도취하는 것은 장자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작은 인간들의 어리석은 삶일 뿐입니다. 분주히 먹이를 찾아다니는 메추라기 짓에 불과합니다.


'지인'이나 '신인', '성인'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도덕경>>에는 '성인'만이 등장하지요. 그럼에도 장자가 이를 나누어 썼으니, 그 뉘앙스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지(至)'는 '이르다, 지극하다'의 뜻이니 '지인(至人)'은 '높은 도덕 수준에 이른 사람,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무기(無己)'란 자기를 내려놓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니 곧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없는 것이요, 자신의 견해와 사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신인(神人)'은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 정도가 될 것입니다. '공(功)'은 <<도덕경>>에서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공을 이루어도 안주하지 않는다', '공성이불처(功成而不處)-공을 이루어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공수신퇴(功遂身退)-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물린다'와 같이 성인의 풍모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무공(無功)'은 <<도덕경>>의 '대교약졸(大巧若拙)-큰 기교는 서툰 듯하다'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장인의 솜씨는 단순하고 간결하기에 군더더기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일반인들의 눈에는 적당히 숙련된 기술자의 민첩하고 화려한 손놀림에 비해 외려 서툴게 보일 수 있지요. 신의 재주를 가진 장인의 결과물에서 특별한 점을 느끼기 어려운 것처럼, '신인'이 이룬 공적은 평범해 보이기에 뭔가를 이룬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것도 대단한 치적인양 과대포장하는 어리석은 위정자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인(聖人)'은 노장 철학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곧 도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름이 없는 이유는 명예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가 무위로 우주 만물을 주재하듯, 성인은 그저 무위로 살아갈 뿐입니다. <<도덕경>>에 '도상무명박(道常無名樸)-도는 한결같이 이름 없는 통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도란 통나무를 흩어서 만드는 그릇 같은 용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본바탕 그대로 존재하는 무엇'이라는 얘기입니다. 실체가 없기에 사람들은 도의 존재를 감각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사람들은 도를 깨달은 성인을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도덕경>>에서 성인이라는 글자에 노자가 투영되어 있듯이 여기의 성인도 곧 장자입니다.


장자는 도를 깨달아 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닌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고, 공을 세우면 뽐내고 싶어 하며, 이름을 알려 큰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얘기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학문과 수양을 통해 정신의 높이를 하늘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성취를 타인과 세상을 위해 공익적으로 쓰고자 하겠지요. 장자는 우리가 그런 노력에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