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 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하불수지어무하유지향 광막지야 방황호무위기측 소요호침와기하 불요근부 물무해자 무소가용 안소곤고재
-어찌하여 아무 것도 없는 시골의 광막한 들판에 심어 두고 하릴없이 그 곁을 방황하고 소요하다가 그 아래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거나 하지 않는가? 도끼에 찍혀 일찍 죽을 일도 없고 해칠 사람도 없는데, 쓰임이 없다고 해서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 소요유(逍遙遊)
혜자는 장자의 친구로 장자와 자주 논쟁을 벌이지만 그때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 뿐입니다. 장자가 보기에 혜자는 시야가 좁고 생각이 편협한 소인입니다.
1라운드에서 신나게 깨진 혜자가 포인트를 만회하려고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공격의 포문을 엽니다.
"나한테 사람들이 가죽나무라고 부르는 큰 나무가 하나 있네. 줄기와 가지가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져 직선을 긋는 자로도 원이나 네모를 그리는 도구로도 쓸 수 없지. 그래서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네. 자네의 말도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이 하나같이 외면하는 거야."
장자의 답변 중에 위의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장자가 보기에 혜자의 생각은 어린아이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물과 사람의 진가를 세상이 만든 시스템 하의 용도 차원에서만 보고 있으니까요. 목수의 기준으로는 곧고 반듯한 나무가 좋습니다. 그러나 나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언제든 베일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을 뿐입니다.
광야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 우리는 고고한 기개와 당당한 고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규칙에 순종하느라 자신의 이상을 잃어 버린 채 반듯한 목재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장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대의 쓸모를 결정하도록 방치하지 마라. 쓰임이 끝나면 그대는 어디에 있으려 하는가?'
대자유는 고독 속에서 피어납니다. 광야에서 움켜쥐는 뜨거운 흙처럼, 이상향으로의 무한 전진을 지속하는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영혼의 안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