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足者不以利自累也 審自得者失之而不懼 行修於內者無位而不怍
지족자불이리자루야 심자득자실지이불구 행수어내자무위이부작
- 만족을 아는 사람은 이익으로 자신을 얽매지 않고, 깨달아 스스로 터득한 사람은 이익을 잃어도 염려하지 않으며, 내면을 수양한 사람은 작위가 없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양왕(讓王) / 장자-잡편6
<<논어>>의 한 대목을 읽는 듯한 내용이지요. 실제로 공자가 안회에게 하는 말입니다.
가난하면서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는 안회에게 공자가 그 이유를 묻자, 안회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성 밖에 오십 이랑의 밭이 있어 죽은 먹을 수 있고, 성 안에도 열 이랑의 밭이 있어 견사와 마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거문고를 연주하며 즐길 수 있고, 스승님의 도를 배웠기에 스스로 즐거울 수 있으니, 벼슬자리를 원치 않습니다."
안회의 답변에 공자는 자신이 외우고 있던 위의 구절을 얘기하며 안회야말로 이 구절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이 안회로부터 배웠다고 칭찬합니다.
공자는 안회를 참으로 깊이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3천 명에 이르는 제자들 중 단연 최고의 수제자로 인정했지요. 공자 자신을 뛰어넘어 인에 이른 사람으로 칭송했습니다. 서른둘에 요절한 그가 '복성공(復聖公)-인을 회복한 성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공자와 안회를 빌려 장자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일까요? 바로 '자존(自尊)'입니다.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는 사람은 재산이나 지위, 학력 따위에 연연하지 않지요. 가진 것이 없다고 위축되지 않고, 많다고 티를 내지도 않습니다. 타인의 평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스스로 설정한 삶의 의미에 집중할 뿐입니다.
학력이 높고, 재산이 많으며,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영혼이 부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 노릇을 하면서 절감한 바입니다. 스스로를 높고 크게 생각하니 칭찬과 인정만을 갈구할 뿐, 꾸지람 수준에 들지도 않는 타이름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덕분에 굳이 애정을 갖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지요. 공자가 안회, 안회 한 이유를 저는 잘 압니다. 사람은 똑같지 않고, 제자도 다 같은 제자가 아닙니다.
* 최근 아시안컵 축구 대표팀 내의 불화가 외부로 알려져 이강인 선수가 사방에서 융단폭격을 받고 있지요.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는 근거는 인성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예수가 재림하여 이강인 선수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노자와 장자가 왜 그리 분별하지 말라고 강조했는지 새삼 알게 됩니다.
한국이 낳은 스물셋 천재 축구 선수가 안회 수준의 인성이라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이십 대 초반의 그대들 인성 수준은 어느 정도였는지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 나이 때, 군 생활을 경험한 남성들은 인간을 동물화하는 비합리적 통제에 대한 반발심을 폭발시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감정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인생이 절단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참고 또 참아야 했지요. 성인군자여서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조명을 받는 혈기 왕성한 젊은 축구 선수가 오만방자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인성을 단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설사 그가 손흥민 선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진실일지라도 그것 역시 그에게 인성 파탄자라는 낙인을 찍을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늘 같은 선배', 이런 헛소리는 사라져야 합니다. 선배가 아니라 스승, 부모도 누군가의 하늘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향해 주먹 정도가 아니라 총칼을 휘두르며 살아갑니다. 아닌 척 할 뿐입니다. 이유 여하, 옳고 그름을 떠나 이강인은 몸으로 자신의 의사 표현을 했습니다. 그 기개에 걸맞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면 됩니다. 그리고 선배들도 넉넉한 마음으로 사과를 받아주고 다시 합심하면 됩니다. 그려면 됩니다.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너 잘 걸렸다'는 듯이 자신들의 화를 이강인을 향해 쏟아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인성을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었던 저의 저열한 인성으로는 이강인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가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위대한 플레이를 이 시대에 선사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축구 선수인 그에게 제가 기대하는 것은 그 뿐입니다. 그가 있을 때 우리나라가 월드컵 우승에 도전하는 역사적인 국가대표팀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는지요. 천재를 품기에 우리나라의 품은 여전히 너무 작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미셸 푸코도 이 나라에서는 가루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학문적 성취는 여성 편력과 동성애 등의 사생활에 묻혀 빛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강인 선수를 향한 언론의 치졸한 공격도 점차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광고 계약 건 등을 끄집어 내며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우는 짓도 서슴지 않고 있지요.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정부패와 비리에는 고개를 돌린 채 '연옹지치' 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국민의 시선을 돌릴 제대로 된 욕받이를 만난 셈입니다. 저는 이강인 선수가 당당하게 처신하기를 바랍니다. 젊은 날의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그는 결코 위대한 축구 선수로서의 현재와 미래 가치를 통째로 폄훼 당할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성하고 사과하고 다시 멋지게 뛰면 됩니다.
그를 향한 분노의 화살이 국민들 저마다의 가슴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후안무치한 자들을 향해 속히 방향을 바꾸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