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조각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시계는 붉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노래를 불러댔다. 민성은 오른팔을 쭉 내밀어 시계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맞은 것은 시계였지만 아픈 것은 민성 자신의 머리였다. 날카로운 돌들이 굴러다니듯 민성의 머릿속에서 통증이 뼈를 긁고 다녔다.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은 민성의 뇌리에 전날 밤의 기억이 스쳤다.
“젠장!”
빗방울이 문제였다. 주말을 앞둔 목요일이었다는 것도 아마 또 하나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은희를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친구의 사무실 한 켠을 얻어 지내면서 삼일 연속 밤늦게까지 남의 글을 대신 쓰고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운전석 유리에 물방울 몇 개가 떨어졌을 때 민성은 차를 멈추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손목에서 시간은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는 빗방울이 본격적으로 굵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술은, 처량한 기분을 달래줄 것이었다.
클럽은 춤추는 사람들과 음악소리로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했다. 젊은 남녀들의 몸은 사방에서 담쟁이처럼 엉켜있었다. 사람들의 몸에서 풍겨 나온 이름 모를 향수들이 한데 뭉친 냄새는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유혹의 그림자가 냄새에 배어 있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자신을 움켜쥐기를 희망하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힘들게 뚫고 들어온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리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잡았다. 반사적으로 뒤돌아 본 민성의 눈 앞에 짙은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의 몸 위에서 파란색은 파도처럼 출렁거렸고, 여자의 눈은 민성을 통째로 삼킬 듯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민성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던 여자의 입은 막다른 골목에서 급격히 우회전하여 민성의 귀에 속삭였다.
“그냥 가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은가요?”
어느새 멀어진 여자의 눈빛은 불빛과 냄새 속에서 끈적거렸다. 민성은 자신이 그 눈빛의 그물에 걸린 먹이임을 직감했다. 젊은 그녀의 파란 원피스는 연애시절 은희가 즐겨 입던 스타일 그대로였다. 공기 중의 냄새에서 경고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은 그보다 더 크게 고막 속에서 메아리쳤다.
“제기랄!”
두통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기억 속으로 다가갈수록 두통이 옆에서 따라왔다. 민성은 여자와 카운터에 앉아 술을 마셨다. 여자도 웃으며 술을 마셨다. 스피커를 부실 듯 쏟아져 나온 음악소리는 온몸을 두드리며 소름을 일으켜 앉혔다. 취한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았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잠들었다가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둘의 등뒤에서 사람들이 부딪히며 지나다녔다. 여자는 자주 머리를 쓸어 넘겼고 여자의 손가락 사이를 통과한 머리카락이 불빛에 찰랑거렸다. 여자의 손가락 끝에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가 머리칼 끝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