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과 관조

by 오종호

景行錄曰 食淡精神爽 心淸夢寐安

경행록왈 식담정신상 심청몽매안


- 경행록에 말했다. "음식이 담백하면 정신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맑으면 꿈자리가 편안해진다." - <<명심보감>> 정기편(正己篇)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사찰의 전통 식사 의식인 발우 공양을 접하게 됩니다. 뉴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환희, 불안과 걱정이 교차하던 1999년 여름, 저는 2주 간의 여름 휴가의 절반을 통도사에서 묵언 수행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발(鉢)은 바리때라고 하여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고 우(盂)는 사발이니, 발우는 승려들의 식기를 일컫습니다. 공양(供養)은 본래 불, 법, 승의 3보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이나 의복, 꽃, 그리고 향 등을 올리는 의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발우 공양이라는 표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시주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발우 받침에 놓인 밥그릇, 국그릇, 찬그릇, 물그릇을 마주하고 죽비 소리에 맞춰 음식 씹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안으로 삼키며 조용히 먹습니다. 공양이 끝날 무렵 다시 죽비를 치면 숭늉이 돕니다. 처음 밥과 국, 반찬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밥그릇에 숭늉을 조금 덜고 앞으로 동이를 전달하지요. 이 숭늉은 그냥 마시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앞의 발우를 말끔히 씻은 다음 마셔야 합니다. 그 다음 물그릇에 담겨져 있던 천수물(千手물)로 헹군 다음 발우 수건으로 모두 깨끗이 닦습니다. 천수물은 마시지 않고 모두 거둡니다. 천수물은 아귀에게 주는 용도라 하지요. 아귀는 계율을 어기거나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진 귀신으로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이 좁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사찰 음식이야말로 담백함의 전형이지요. 자극적인 재료가 쓰이지 않아 맛이 밍밍합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어도 점차 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간소하고 정갈한 식사는 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식탐을 없애 줍니다. 인간은 먹어야 살지만 먹는 대상이 풍성할 필요도, 먹는 행위가 화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이 살찌워야 할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철학 역시 다르겠지만 이때 이후 저는 소식을 생활화했습니다. 지나친 포만감에 젖지 않도록 양을 조절하면 소화도 잘 되지요.


먹방은 소식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타인의 먹는 행위를 지켜보며 사람들이 공유하는 재미와 쾌감의 실체를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알 이유도 없겠지요. 그저 현실에 존재하는 문화 현상의 일종으로 인정할 따름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호식(好食)은 탐식으로 이어지기 쉽고, 탐식은 먹는 음식의 양을 증가시켜 비만이 되게 하거나 점차 새로운 음식, 고급 요리를 갈망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절제력이 점차 감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탐식은 탐욕을 훈련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이 먹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탐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은 돈을 먹습니다. 먹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더 많이 먹으려 합니다. 돈 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자들이 승리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자들로 인해 불쾌해진 정신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소식이 필요합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일단 자극되면 마음속에서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온갖 잡념이 잡념을 낳는 경험은 누구나 하기 마련입니다. 심란하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꿈자리도 뒤숭숭한 법이지요. 어느 인간도 자기 생각의 주인이 아닙니다. '생각이라는 말을 부리는 완벽한 이성이라는 마부'가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관점은 틀린지 오래입니다. 흄의 말대로 '인간의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입니다. 인간이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은 느낌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매일을 감정적으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대상에서 풀어놓는 대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 위의 하늘에 생각들을 구름처럼 풀어놓으세요.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서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세요. 생각들은 생각들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노는 것입니다. 구름이 내 것이 아니듯,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생각들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생각=나'의 등식에서 벗어나면 간단합니다. 내 것이 아닌 구름에 집착하여 잠 못 이루는 짓을 하면 안 되지요. 상념들은 그저 바람의 길을 따라 흘러갈 따름입니다. 풍경을 바라보다 스스륵 잠들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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