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한 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 - <<명심보감>> 계성편(戒性篇)
자신을 살리기 위해 독사가 죽어 있는 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한 줄도 모르고 목이 말랐던 징기스칸은 화를 참지 못하고 매를 죽여 버립니다. 이윽고 사태를 파악한 징기스칸은 후회하며 다짐하지요. "앞으로 화가 났을 때는 아무 것도 결심하지 않겠다"고. 분노에 휩싸여 행한 일은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분노로 인해 일을 그르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야 할 유명한 일화입니다. 불덩이를 삼킨 듯 다혈질이었던 저도 분노의 감정에 휘둘렸던 적이 많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분노를 삭이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저 일어난 감정을 관조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마음이 동요하는 일은 극히 드물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 이치를 제가 저절로 깨우쳤을리는 없습니다. 명리학 공부를 통해 인간에게 작동하는 에너지의 작용 방식을 통찰하게 된 덕이 큽니다. 또한 제 결심과 노력에 대운에서 들어온 에너지의 도움을 크게 받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저마다 타고난 에너지의 조합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냥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과 불화하며 살아가거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삼독이라 하여 불교에서는 탐, 진, 치를 깨달음에 방해되는 세 가지 근본 번뇌로 보았습니다. 여기에도 분노가 담겨 있을 정도이니 인간에게 있어 분노의 감정은 매우 다스리기 어려운 것임에 분명합니다.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요. 그만큼 분노를 야기시키는 세상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의 감정이 끓어오르도록 인간이 진화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꼭 필요한 분노도 있습니다. 공적 분노입니다. 사적 분노가 불의의 씨앗이라면, 공적 분노는 정의의 원료입니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 전쟁,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우리의 3.1운동, 독립 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촛불 혁명 등은 모두 자유를 가로막는 체제의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타오른 결과입니다. 공적 분노 없이는 저항도 없고 사회 변혁은 불가능합니다.
경제 폭망, 불공정과 부정부패의 만연,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민족 정기의 훼손과 친일의 부활, 평화 체제의 붕괴와 전쟁 위기의 증대 등 우리는 국가 몰락의 뚜렷한 징후를 목도하고 있지요. 그래도 시민이 공적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입니다. 저항 세력의 씨를 말리려는 불의한 자들의 사적 분노가 극에 달하겠지요.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말했습니다. “...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심판하지 않으면 심판된다. 0410: Judgement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