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조건

by 오종호


景行錄云 屈己者 能處重 好勝者 必遇敵

경행록운 굴기자 능처중 호승자 필우적


- <<경행록>>에 일렀다. "자기를 굽히는 사람은 중한 일을 맡을 수 있으나,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 - <<명심보감>> 계성편(戒性篇)



햇빛은 모든 곳을 비추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희구하는 신의 전지전능함은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인생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높은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습한 어둠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자진해서 후자의 처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스스로 불행의 굴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그것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는 팔리어로 '둑카(dukkha)'입니다. 팔리어는 인도인인 석가모니가 사용했던 고대 인도어입니다. 둑카는 모든 존재가 원치 않아 회피하고자 하는 괴롭고 불만족스러운 상태나 경험을 아우릅니다. '고' 보다는 좀 더 폭이 넓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드문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둑카를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고, 모든 일은 조건에 따라 발생합니다. 조건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외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 두 개가 서로 어우러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은 로또 구매라는 자신이 만든 조건에 자신이 구매한 로또를 1등으로 결정해 준 외부의 조건이 결합되어 둑카에서 벗어나 수카(sukha)를 얻게 됩니다. 수카는 둑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어 하는 행복을 지칭합니다. 로또 1등 당첨이 이후의 인생을 수카로 지속되게 해줄지, 아니면 또 다른 둑카로 이어지게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의 생각이 압도적으로 전자를 향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대천재가 머리를 굴려도 모든 사람을 로또 1등 당첨자로 만들 복권 시스템은 가능하지 않지요. 그래서 개인은 복권이나 도박 같은 행운을 바라며 살아서는 안 되며, 나라는 소수만을 운 좋게 만드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됩니다.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데 성공한 개인이 우쭐해하며 목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사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이니까요. 대신 그렇게 살면서 부와 권력이 있다는 조건만으로 타인과 사회의 존경을 기대해서는 안 되겠지요. 몸을 구부리는 법을 알지 못하는 햇빛이 음습한 곳을 찾아 환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부를 일구고 권력을 획득한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의 태생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빛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을 굽힌다는 것의 의미를 단순히 겸손함에 국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빛이 닿지 않는 어돔 속에서 불운과 불의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역량만큼,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사회의 불평등을 제거하고 모두가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에 기여해야 합니다. 피부라는 살덩어리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생각 장치만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세상이라는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타인까지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킨 사람이 동일한 정신을 가진 인간일 수는 없습니다. 부러진 자기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사람은 없듯이,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불행에서 고통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야 합니다.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자기 권력만을 위해 살아온 위선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들의 고통을 끊어 내고 무너지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정직한 사람들을 뽑는 총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도덕경>>에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疏而不失-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긴 듯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국민 위에 완벽히 군림하려는 검찰 독재를 끝내기 위해서 이번에는 우리가 그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불행과 나라의 불행을 키우는 묻지마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은 부디 이번 한 번만이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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