飽煖思淫慾 飢寒發道心
포난사음욕 기한발도심
-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욕이 생각나고, 배고프고 추우면 도를 닦으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苦海)란 물리적 세상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인간 정신, 인간의 심리 상태를 가리킵니다. 깨닫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대부분의 인간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세상을 떠나는 셈입니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대상으로 한 붓다의 최초 가르침이 사성제였습니다. 고, 집, 멸, 도의 진리를 인식하고 실천할 때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쇼펜하우어는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로 인생을 비유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맹목적 의지가 작동하는 쇼펜하우어적 세계는 영화 '매트릭스' 속 가상 시뮬레이션 세계와 일맥상통합니다. '의지'에 의해 결핍과 권태의 상태를 오가도록 숙명지워진 인간의 삶이란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는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에서 가장 악한 세계다."
위의 '포난'은 쇼펜하우어의 권태, '기한'은 그의 결핍에 대응하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달리 결핍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의 욕망이 풍요와 안락을 향해 있다면 그것을 획득한 상태는 권태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차가 멈추듯이 더 나아갈 곳을 갖지 못한 인간은 방향을 상실한 채 제자리에서 방탕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더 큰 부와 명예를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고 더 강하게 가속 페달을 밟는 사람도 있고, 자기 안에서 빠져 나와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기여에 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핍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신적 각성을 도모하게 할까요? 그럴리가요. 장사가 안 되어 가게를 접을 지경에 이른 사람이 술을 마시며 세상을 비관하기는 쉬워도 책을 읽으며 심기일전의 계기를 찾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그 일을 시도하여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의 인생은 달라지게 됩니다.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든 배움을 통해 지식를 연마하고 지혜를 터득하여 성공의 동력을 만들어 내든,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재의 고통에 다만 몸부림치는 삶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냉소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경이의 눈빛으로 대하는 것이 세상 인심입니다. 결핍의 상태에 있는 동안은 차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단단한 영혼을 빚어야 합니다. 시련이 인생의 필수 요소임을 인정하면 허약하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꾸준한 공부가 영혼 빚기 작업의 재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도를 닦는 일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올라온 사람만이 성취 후에 권태로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성숙해진 영혼으로 둘러보면 세상은 늘 걸어갈 길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