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격

by 오종호

人義 盡從貧處斷 世情 便向有錢家

인의 진종빈처단 세정 변향유전가


- 사람의 의리는 모든 가난한 곳으로부터 끊어지고, 세상의 인심은 곧 돈 있는 집으로 향한다. -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



예나 지금이나 돈의 위력과 돈 앞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부와 권력을 으뜸으로 치는 세태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인간 정신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돈이 없다고 부모를 버리고, 부부의 연을 끊으며, 친구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한, 어느 인간도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버려져 잊혀지고 방치된 채 병들어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니까요.


확률적으로 누군가는 불평등한 조건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선천적 질병까지 안고 태어난 아이가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을 당연시한다면 인간 사회는 정글과 별반 다를 바 없겠지요. 사업하다가 실패한 성인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방치하는 사회를 용인한다면 앞으로 AI 로봇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기고 수입원을 상실하는 모든 인간은 사회적 구제를 받지 못한 채 생존 위기에 처하고 말 것입니다.


고전의 글귀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지만 그것 자체를 진리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가 궁핍한 처지에 있다고 하여 의리를 저버린다면 권토중래한 그에 의해 동일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수용해야겠지요. 돈 많은 사람이 인심을 잃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마음이 아니라 돈으로 사람을 얻으면 돈이 흩어질 때 사람들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사건과 사고, 질병 앞에서 예외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기치 않은 불행을 만나더라도 삶이 흔들릴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 보다 덜 각박해지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정신 수준 보다 더 높은 사회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는 자문해 봐야 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