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린 벌거벗은 창녀는 검은 색 암렝스(arm length) 글로브를 낀 손으로 돼지 목줄을 잡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모래 속에 고개를 처박는 타조처럼,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타인 눈에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부끄러움이 없다.
어쩌면 그녀는 탄력 있는 몸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덕에 돼지 목에 줄을 채워 마음껏 부릴 수 있게 되었으니.
돼지는 앞만 보고 간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돼지에겐 천사들의 춤이 보이지 않는다. 괜히 고개를 돌렸다가 줄이 목을 조이면 자기만 손해이기에 돼지는 묵묵히 전진할 뿐이다. 예술가들은 땅밑으로 숨어 버렸다. 돼지에겐 음악도, 시도, 그림도 필요 없다. 먹을 것이 풍기는 달콤한 향기가 있는 곳으로 나아갈 뿐이다.
창녀는 돼지의 발소리에 귀를 막은 자들을 경멸한다. 비겁한 놈들 같으니. 욕망 덩어리인 주제에 감히 욕망을 향해 나아갈 엄두도 못내면서 짐짓 고결한 척하는 위선자들. 창녀는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는 있다. 천사들의 날갯짓과 위선자들의 숨죽인 호흡 소리를.
돼지가 꿀꿀거린다. 목줄을 잡아당긴다. 켁켁켁. 킥킥킥, 웃음이 난다. 바보 같은 돼지 새끼.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은 네 멱따는 소리가 아니란다. 내 구두 뒷굽에서 나는 소리지.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곧 의회 민주주의의 역사다. 의회는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의회가 정부를 구성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제헌 국회를 통해 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행정부를 구성했다. 그래서 대의 민주제를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의 자격이 없다. 그것은 국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주인에겐 권리가 있지만 노예에겐 의무만 있다. 스스로 주인임을 알지 못하는 국민은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서는 납세의 의무에는 '나를 위해 세금을 쓰라'고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한다.
돼지는 꿀꿀거리고 창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봄날은 변덕스럽다. 이제 진짜 국회의 시간이 왔다. 국민은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