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99년, 한나라의 장군 이릉은 5천의 병력으로 흉노의 대군과 맞서지만 역부족이었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을 선택한 이릉. 흉노 왕은 용맹무쌍한 그를 포섭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한의 충신인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릉은 호시탐탐 탈출의 기회를 노릴 뿐이었다.
이릉이 전투에 패한 것도 모자라 항복으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유로 한 무제는 그의 일족을 몰살해 버린다.
이릉의 인물됨을 잘 알았기에 그의 변호에 나선 의리의 사마천. 하지만 대한민국 검사들을 닮아 바른 말을 가려들을 귀를 갖지 못했던 성질 고약한 무제는 사마천의 소중이를 싹뚝 자르라 명한다.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사서를 편찬하기 위해 죽음 대신 수모를 감수한 사마천의 선택. 비록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서를 남김으로써 그는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한편, 무제의 잔인무도함에 열받은 이릉은 복수를 선택한다. 흉노 왕의 사위가 된 그는 20년 동안 흉노의 군사들을 지휘하면서 한을 괴롭힌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동생 진석의 죽음에 분노한 진태가 인민군으로 전향하여 깃발 부대를 이끌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
죽간에 붓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사마천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피어난 <<태사공서>>라는 꽃은 훗날 <<사기>>라는 이름으로 세대를 넘어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본기> 12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 총 130권 52만 6,500자의 방대한 기록을 남긴 한 인간의 인생 앞에서 숙연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 중에서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눈을 잡아끄는 것은 단연 <열전>. 사마천의 간택을 받아 <열전>에 실린 인물들은 '사마천의 사람들'이다. 부조리한 사회가 강요한 절망에 굴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여백 없이 꽉 채운 사마천은 자신의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열전>에 등장하는 사마천의 사람들의 삶 가운데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골라 틈틈히 현대적인 언어로 읽기 쉽게 재구성해 보려 한다.
거짓말이 일상인 무능한 권력자와 그의 하수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성과 인간의 본성을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적나라하게 표출 중이다. 그런 자들에 의해 지배 당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사마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는 나의 시간도 내 삶의 여백을 채색하는 붓칠일 것이니, 언제나 시간으로 시간을 채우는 것이 인생일지니, 꼼지락거리는 한 인간의 짓에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