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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10. 2024

법의 자충수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오십 금을 주겠다."


진나라 효공에게 등용된 상앙은 법령을 새롭게 제정한 후 백성들로 하여금 신법을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 묘안을 냅니다. 도성 남문 앞에 나무 기둥을 세워 두고 그것을 북문으로 옮기면 십 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인 것이지요. 하지만 나서는 백성이 없었습니다. 하는 일에 비해서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다들 그저 의아하게 여길 뿐이었지요. 그러자 상앙은 포상금을 다섯 배로 올린 방을 새롭게 붙인 후 나무를 옮긴 사람에게 즉시 약속한 오십 금을 지급했습니다. 이후 법률이 공포되자 만 백성들이 법을 잘 지켰다고 합니다. 정부와 백성 간에 형성된 신뢰 덕분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하지만 법에 의거한 상앙의 정치는 소위 기득권층의 반발을 삽니다. 특히 법을 어긴 태자의 처벌을 주장하다가 태자의 교육을 담당한 스승들에게 죄를 묻는 것으로 대신한 일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태자와 그의 무리들의 원한이 깊어지지요. 


진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를 잇자 상앙은 쫒기는 몸이 되고 맙니다. 반란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은 상앙은 다른 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도망치다가 국경의 한 여관에 들어갑니다. 여관 주인은 그의 숙박을 거절하지요. 여행증을 소지 않은 손님을 투숙하게 하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의 그의 거절 사유였습니다. 그 법은 다름 아닌 상앙 자신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자승자박의 상황에 탄식이 절로 나왔겠지요. 


위나라에서 외면 당한 상앙은 자신의 영지인 상 땅으로 가서 군사를 모읍니다. 진나라를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그는 약소국인 정나라를 발판으로 삼고자 침공하지만 진나라 원병들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지요. 거열형에 처해진 그의 시신 조각들은 각 지방으로 배분되어 반역에 대한 경계로 쓰였으며, 그의 삼족이 모두 멸했습니다. 


정부와 지도자의 말이 신뢰를 얻으면 국민은 알아서 법을 지킵니다. 법이 평등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 법을 준수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국민들이 떼죽음을 당해도 나 몰라라 하고, 군복무 중에 억울하게 숨진 병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는 특검법을 거부하면서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공허합니다. 육사에서 독립 투사들의 흉상을 철거하면서 대한민국 영웅들을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는 리더의 말은 한심합니다. 법과 원칙에 한치의 어긋남 없이 엄정하게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말에는 지나가는 소도 웃을 지경입니다. 잼버리 파행, 부산 엑스포 유치전 망신의 꼴을 보이고도 자격에 한참 미달하는 요상한 외국 업체를 전면에 내세워 석유 팔이에 나서는 꼴은 유치하기 그지 없습니다. AI 로봇 시대, 신재생 에너지의 시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어리석은 짓거리에 다름 아닙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석유가 사안의 본질이라고 믿는 국민은 정신 나간 사람들 외에 많지 않습니다.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하다"고 일갈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풍자가 여전히 유효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선진국에 진입하기 무섭게 후진 기어를 넣고 온 힘을 다해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 뻔한 사람을 나라를 이끌 리더로 선출한 무지성의 탓입니다. 


그래도 이 엄혹한 세월은 끝을 향해 맹렬히 치닫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의 자충수 때문입니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라는 그의 말은 자신과 자신의 배우자를 향한 법의 칼날을 불러들이는 자충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 무슨 일을 해도 의심부터 받는 정부가 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역사 속 수많은 권력자들이 내부의 배신과 반란으로 한 순간에 무너졌듯이 이 정부의 끝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법을 내세워 국민을 겁박하고 석유를 내세워 국민을 현혹해도 오직 이익을 위해 뭉쳐 있는 수구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데 방해된다고 결정하는 순간 비참하게 벼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법을 신봉했던 법가 사상가 상앙은 법의 한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스스로 법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무리를 위해 법을 악용해 온 가짜 법치주의자의 말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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