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람들
긴 세월 동안 제후국들의 국경을 넘나들며 원탑 진나라에 대항할 합종책을 완성했으나 그것이 와해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진의 열정은 소진되고 있었으나 그의 정력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진은 사랑에 국경이 없음을 증명하는 일을 자신의 마지막 과업으로 삼은 것이었는지, 역왕의 모친과 정분이 났다. 그래,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지.
소진에게서 아빠의 향기를 느낀 것인지 자신을 더욱 우대해 주는 역왕의 모습에서 그는 덜컥 겁을 먹는다. 연나라 조정에 가득한 적대 세력이 역왕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날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터. 소진은 역왕에게 아뢴다.
"신 소진, 안에서는 할 일이 적으니 제로 건너가 밖에서 연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하옵니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연나라에서 죄를 지어 도망가는 것으로 위장하여 제나라로 넘어간 소진. 제나라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하자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백성들에게 왕의 효심을 보이고, 궁궐 확장과 인테리어 공사로 위엄을 드러내도록 설득한다. 물론 제나라가 국고를 탕진하도록 하여 연나라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게 하려는 계책이었다. 품격 있는 멀쩡한 대통령 집무실을 직사각형 콘크리트 건물로 옮기느라 자발적으로 돈을 허공에 날린 동방의 어느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제나라 신하들이 모두 소진의 폭주를 방관하지는 않았으니, 그들 중 하나의 사주를 받은 자객에 의해 소진은 치명상을 입고 만다. 민왕이 범인 검거 총동원령을 내리지만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죽음을 직감한 소진이 민왕에게 부탁한다.
"전하, 신이 죽으면 거열형으로 다스리신 후 백성들이 많은 시장에 내보이십시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죄목을 내거시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진의 말대로 하자 범인이 자수했고, 민왕을 그를 처형했다.
허무하게 생을 마친 소진의 사후 그가 연나라를 위해 의도적으로 제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키려 했음이 밝혀진다. 소진의 출세를 본 그의 동생 소대와 소려가 종횡술을 익혀 그의 뒤를 잇는다. 그들은 천수를 누리고 갔다.
고려의 서희 장군처럼 탁월한 외교력을 가진 인재 하나가 나라를 구하는 법이다. 국제 정세를 읽는 탁월한 눈과 각 나라 리더들의 심리를 읽는 뛰어난 통찰력, 그리고 리더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언변으로 한 시대의 구도를 직접 설계하고 구축하는데 성공한 소진의 사례는 무능한 외교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며 국익을 훼손하고 경제를 파탄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또렷이 대비된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을 뽑겠다'는 우중이 나라를 망친다. 그들 때문에 좋은 인재들이 나라를 위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파렴치한 자들과 싸우느라 기력을 소진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