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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18. 2024

합종연행, 소진과 장의-8

사마천의 사람들

혜왕, 리더의 품격을 보여 주다. 



6개국 간의 연합을 토대로 진나라와 맞서고자 한 소진의 합종책과 진나라를 맹주로 하여 타 제후국들을 포섭하려 한 장의의 연횡책은 본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출처: 위키백과


진나라의 남쪽에는 촉나라와 파나라가 있었다. 훗날 유비가 촉한을 세우는 땅인 파촉 분지가 바로 이곳이다. 촉나라와 그 옆의 저나라가 서로 싸우고는 진나라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자 진 혜왕이 고민에 빠진다. 마침 그때 한나라의 동태가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촉을 치자니 지세가 좁고 험하여 곤경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고 한나라의 기습이 염려되었다. 그렇다고 한을 먼저 치고 촉을 정벌하자니 명분이 부족했다. 혜왕은 장의와 장군 사마조를 불러 의견을 묻는다.


장의는 위, 초 두 나라와 연합하여 한나라를 공격하여 허울 뿐인 주나라 황실을 접수함으로써 실질적인 넘버원으로 등극하는 것이 척박한 촉 땅을 얻는 것보다 이익이 됨을 역설했다. 


사마천의 직계 조상인 사마조는 정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 


"전하, 우리 진나라의 영토는 아직 충분히 넓지 않아 빈곤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많사옵니다. 촉 땅을 빼앗아 흉포한 촉의 무리를 벌한다 해도 천하는 오히려 반길 것입니다. 촉의 영토와 자원, 그리고 노동력으로 우리 진은 부유해지고 더욱 강성해지게 될 것입니다. 


반면 한을 공격하면 한의 주변 동맹국들이 달려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쟁의 양상이 어찌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급해진 주나라 황실 역시 명분이 약한 우리가 아니라 초나라에 구정(九鼎)을 넘길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한나라 정벌은 자칫 실리와 명분 모두를 잃을 염려가 크옵니다."


두 신하의 말을 경청한 혜왕은 사마조의 손을 들어 준다. 결정이 쉽지 않은 사안이 생길 때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의 모범을 혜왕은 보여 주었다. 참모들이 자유롭게 때로는 피 터지게 논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것, 국익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합리적으로 도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참여자들간의 불필요한 알력 다툼을 방지하고 경쟁심을 개인 역량의 성장과 분발의 계기로 승화시켜 다시 국력 신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그것이다.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혼자 도리도리 짝짜쿵하는 리더 앞에서는 입을 열어 바른말 하기가 두려운 법이다. 자칫하면 재떨이를 대체한 신무기인 술병이 얼굴로 날아들 수 있고, 듣도보도 못한 격노 언어로 인해 고막이 손상될 수 있으며, 어디선가 캐비닛 문이 슬그머니 열릴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혼자 똑똑한 척 다하는 리더는 자신의 말에 눈망울을 반짝이며 감격한 표정을 짓는 칠푼이들만을 곁에 두는 법이다. 그런 나라와 기업이 잘 된 사례는 역사에 없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혜왕의 모토에 힘입은 사마조는 촉을 신속히 정벌하는데 성공한다. 그의 말대로, 촉 땅을 수중에 넣은 진나라는 더욱 부유하고 강성해져 천하통일의 토대를 갖추게 된다.   


참모라면 리더가 자신의 모든 의견을 수용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의견이 묵살되는 경험에 익숙해져야 한다. 장의는 참모의 숙명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절체절명의 안건이라 해도, 리더에게는 더 크고 급한 의사 결정 건이 있을 수 있다. 최고의 의견임에 분명하지만 시기와 상황에 맞지 않아 후순위로 밀리거나 폐기 처분될 수도 있다. 


리더는 고독한 존재다. 자신의 최종 결정에 따라 조직과 조직 구성원의 미래가 좌우되는 선택에 지속적으로 직면한다. 그렇기에 '뽀다구' 난다고 아무나 함부로 리더가 되기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고독한 시간을 술과 무형의 에네르기로 채우는 리더가 있다면 그는 자기 것이 아닌 자리에 앉아 있는 셈이다. 한시라도 빨리 자리 아래로 굴러 내려와야 조직도 살고 사람들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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