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람들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려 하는데 제나라와 초나라와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첩보를 들은 장의는 초나라를 방문한다. 초나라 회왕은 그에게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을 제공하며 환대한다.
"경께서 이 궁벽한 곳까지 어쩐 일이시오?"
"전하, 제나라와의 맹약을 깨십시오. 그리하시면 600리에 이르는 땅을 드리고, 진의 공주를 전하의 후궁으로 보낼 것이며, 앞으로도 왕실 간의 혼사를 통해 영원히 형제국 사이가 되도록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입이 째진 회왕이 즉석에서 수락하고 대신들에게 자랑하자 모두가 축하했다. 그러나 진진만이 반대하고 나섰다.
"신이 살펴보건대 땅은 얻을 수 없고 오히려 진과 제가 연합함으로써 우리 초에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흥이 깨져 짜증이 난 회왕이 물었다.
"뭔 근거로 그리 말하는 거요?"
이름으로는 진나라 신하가 어울리는 진진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진이 우리 초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와의 맹약을 깨면 진의 입장에서 우리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고립무원이 된 우리를 위해 진이 영토를 쪼개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전하, 장의는 진으로 돌아가자마자 우리를 배신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배신 당한 제를 부추겨 우리를 협공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제와 단교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장의가 진으로 돌아갈 때 사람을 딸려 보내 그의 진의를 파악해야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진나라 공주의 얼굴이 궁금했던지 회왕은 진진의 말을 듣지 않고 장의에게 많은 재물을 안겨 주고 진나라로 돌려 보낸다. 다만 사신을 장의의 일행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제나라로 통하는 국경을 닫고 국교를 단절한다.
진나라에 도착한 장의는 수레에 오르다가 일부러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연기를 하여 부상 치료를 핑계로 세 달 동안 조정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초나라의 배신에 열 받은 제나라가 진나라와 수교를 맺자 조정에 나타난 장의가 초나라 사신에게 말한다.
"제 소유의 땅 6리를 초나라 전하께 바치겠소."
사신이 돌아가 이 말을 전하자 격노한 회왕. 당장 핵 버튼을 누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를 진진이 달랬다.
"진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아니되옵니다. 차라리 땅 일부를 뇌물로 주고 진과 연합하여 제를 친 후 제의 땅으로 보상 받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하지만 진진이 얘기만 하면 징징대는 것처럼 들렸는지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를 선제타격한 회왕. 제나라와 연합한 진나라에게 박살나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잃고 영토를 빼앗긴 후 겨우겨우 휴전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진나라가 땅 일부를 맞교환하자고 압력을 행사하자 회왕은 이를 갈면서 장의를 보내 준다면 땅 그까이꺼 그냥 바치겠다고 답한다.
땅이 탐난 진 혜왕. 차마 장의를 사지로 밀어넣지는 못하는데 장의가 자청하고 나선다. 장의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장의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 초 회왕은 장의의 얼굴을 보자마자 옥에 가두고 죽이기에 좋은 날을 받으러 만공 스승에게 사람을 보낸다.
장의와 가까운 사이였던 초의 신하 근상은 왕비를 찾아가 말한다.
"중전마마, 마마께서는 장차 전하의 총애를 잃게 되실 것을 알고 계십니까?"
"무슨 소리요?"
"지금 전하께서 장의를 죽이려 하시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진나라 왕은 장의를 구하기 위해 전하께 땅과 울트라 초미녀들을 선물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부동산에 관심이 많고 미녀라면 껌뻑 죽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절세미녀들에 둘러싸인 전하께서 중전마마를 멀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옵니다."
밤낮으로 왕비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던 회왕이 마침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장의를 사면하고 후히 대접토록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