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람들
석방된 장의는 소진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때가 왔음을 짐작하여 초 회왕을 만난다. 장의는 쬐깐한 애들하고 놀지 말고 진, 초 두 대국끼리 손을 잡고 형제국이 되어 사이좋게 지내자고 제안한다. 서로의 태자를 각각 볼모로 보내고, 진나라 공주를 회왕의 후궁으로 삼는 조건이었다.
회왕이 또 장의에게 속아 넘어가려 하자 충신 굴원이 반대하고 나선다. 하지만 한 번 배신한 자는 또 배신하고 한 번 속은 자는 또 속는 법이니, 굴원의 말은 회왕의 귀에 닿지 못한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어리석은 초 회왕은 진 소양왕의 정상회담 요청에 응해 진나라를 방문했다가 억류된 채 병사하고 만다. 그의 맏아들 경양왕은 간신들의 말을 듣고 굴원을 강남으로 추방하였으며 굴원은 돌덩이를 품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사마천은 <굴원가생열전>에서 그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다.
초나라를 구워 삶은 장의는 한나라, 제나라, 조나라, 연나라를 차례로 다니며 소진의 합종책을 붕괴시키고 모두 진나라를 따르는 연횡책을 완성했다.
그러나 진나라로 복귀하자 진 혜왕이 사망한 뒤였고, 태자 시절부터 자신을 싫어한 무왕이 즉위해 있음을 알게 된다. 제 시절을 만난듯 진의 신하들은 장의를 헐뜯었다. 진에서 장의가 홀대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6개국 제후들은 연횡책에서 다시 합종책으로 돌아갔다.
외교는 인간의 마음을 닮아 조변석개한다. 지구는 외교를 망치는 지도자를 가진 나라를 용납하지 않는다. 헬리오스의 태양마차를 몰고 폭주하다가 추락해 죽은 파에톤으로 인해 인간 세상은 초토화되었다. 자격 없는 자가 나라의 고삐를 쥐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고사되고 말 것임을 안 장의는 진 무왕을 찾아가 딜을 건다.
"전하, 제나라 왕이 저를 노리고 있다 하니 제가 위나라로 건너가면 그가 반드시 위를 침공할 것이옵니다. 그 틈을 타 전하께서 한을 점령하신 후 주나라를 위협하여 천자의 증표를 받으십시오. 하오면 대업의 기틀을 세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장의가 위나라로 들어가자 예측대로 제나라가 쳐들어온다. 장의는 슬픔 외에 겁도 많았던 애왕을 다독여 자신의 수하를 초나라로 보내 초나라의 사신 신분을 얻게 한다. 그는 제나라로 들어가 국력을 소모하고 주위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제나라 왕의 어리석은 행위를 멈추게 한다. 제나라는 곧 철군하여 돌아간다.
위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한 지 1년, 장의는 파란만장한 천하 유세의 삶을 마감한다.
사마천은 소진과 장의를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들로 평했다. 주체적 외교 역량이 결여된 나라가 타국에게 휘둘리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자주적 외교력을 상실하고 국제 정세라는 파도 위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캄캄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