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람들
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 유세를 통해 전국칠웅의 대치 형세를 그린 사마천은 이어 통일 전후의 진나라 상황에서 명멸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다.
<저리자감무열전>에서는 진나라의 책사로 활약한 저리자, 감무 두 사람의 생애를 다루고, <양후열전>에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한 진나라 소양왕을 대신해 섭정한 계모 선태후의 이복동생으로서 장기간 국정을 장악했으나 정적 범저에 의해 제거된 양후의 삶을 보여 준다.
<백기왕전열전>은 진시황의 중국 통일에 공을 세운 두 장수 백기와 왕전에 대한 얘기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 권력자는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하여 민심을 얻고 세력을 형성한 가신들을 곱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하며 그들의 정적을 이용한 숙청의 기회를 엿본다. 한신을 비롯한 창업 공신들을 날린 유방이나 권력 상속 과정에서 노회한 가신들을 모조리 척살한 손권 등이 좋은 예다. 특히, 불사의 몸이 되어 영원한 권력을 꿈꿨던 진시황을 위해 일했던 자라면 누구든 단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치 못했을 터.
현대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을 잡을 때마다 사람을 활용하고 제도를 악용하여 권력을 승계하고 부를 독점하려는 우리나라의 수구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적들의 제거에 집요하게 잔인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지만 절대 부패 세력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민중을 착취해 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나라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민주 진영의 정권 탈환과 잔인한 권력 행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스템에 의한 합리적 통치라는 명목에 사로잡혀서는 일시적 승리와 예정된 패배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곱게 싸우기를 버리고 사즉생의 각오로 대결하여 시스템을 완전히 해체, 재구성함으로써 국가 대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악은 선의 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은 무르기 때문이다. 악을 대하는 선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민주 진영의 사명이다. 백기와 왕전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정치의 냉혹함과 인간의 잔인무도함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절대 군주에게 토사구팽 당하는 신하들의 비극적 최후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일구겠다는 원대한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승리해야 한다. 몰아내고 잔인하게 응징해야 한다. 이 나라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진나라처럼 허무하게 공중 분해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