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람들
백기는 소양왕 치세기에 진나라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주변 제후국들과의 싸움을 연전연승으로 이끌었고 싸움이 끝난 후에는 포로들의 목숨을 잔인하게 거두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던 때의 일이다. 조나라의 장군 염파는 막강한 위력의 진나라 군대와 정면 대응하는 대신 수성전을 펴고 있었다. 이에 진의 재상 범저가 뇌물로 조나라 대신들을 구워 삶아 다음과 같은 소문을 퍼뜨리도록 했다.
'진나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조괄이 장군이 되는 것이다. 염파는 상대하기 쉬운 자이다.'
염파가 진과의 싸움에서 여러 번 패한 후 성 안에 틀어박혀 있자 날마다 격노하는 중이었던 조나라 왕은 이간계에 속아 지휘관을 교체하고 만다.
군 지휘관의 자질이 부족했던 조괄은 괄괄한 기질만을 앞세워 총공세를 편다. 진나라의 유인책인지도 모르고 달아나는 적을 맹렬히 쫒던 조나라 군대는 매복병들에 의해 퇴로가 끊긴다.
군량이 바닥난 채 40여 일을 보내자 조나라 군영에서는 서로를 죽여 인육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앉아서 굶어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 포위망을 뚫기 위해 정예병을 이끌고 출전한 조괄이 죽자 40만에 이르는 조나라의 병사들은 곧바로 백기 투항했다.
백기는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과거의 사례를 떠올리며 조나라 군사들이 진심으로 진나라에 귀순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포로들을 모조리 생매장한 후 어린아이 240명만을 조나라에 돌려보냈다.
조나라 조정과 백성들은 백기의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게 되었을 터. 백기는 분노가 공포에 짓눌리면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쌓은 업은 되돌아오기 마련, 백기의 최후가 아름답기는 글러 먹은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