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섹스에만 관심 있다고?

-연애는 연애요, 결혼은 결혼이로다. (사랑/연애)

by 오종호

서른(男)


제대하고 복학해서 친구 소개로 만나 사귀기 시작했으니 연애 5년차네 벌써.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1년 다녀왔고, 배낭여행도 1년 정도 해서 회사 다닌 지는 만 2년이 좀 안 되는 상황이야. 그간 적응하느라고 똥줄 좀 빠졌지. 이제 좀 부서 업무가 전체적으로 보이는 듯하고 실수도 거의 안하게 되어서 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긴 해. 예전처럼 계속 야근 안해도 되고.


여친은 동갑내기 웹디자이너야.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닐 때 날 만났지. 두 번 직장 옮기고 이번이 세 번째 회산데 나름 경력도 좀 쌓였고 능력도 인정 받는 편이지. 연봉도 높고.


나 취업하기 전에는 평일 저녁엔 여친 자취방에서, 주말엔 내 자취방에서 함께 지냈어. 각자 일이 있을 땐 못 만나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틀에 한번은 같이 잤던 것 같다. 여친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하고 싶었지만 동거는 못했어. 섹스하고 밥 먹고, 밥 먹고 섹스하고, 술도 한 잔하고. 거의 부부처럼 지낸 거지. 우린 우리의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는 그렇게 자주는 못 만났어. 맨날 야근에 회식도 많았고. 그래도 평일 이틀 정도는 밤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했었는데 쉽지 않더라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말에만 보는 걸로 됐어. 빠르면 금요일 밤이나, 늦어도 토요일 오전에는 만났지. 자주 못 보니까 더 애틋한 것도 있고 나쁘지 않더라구.


6개월 전 쯤이야. 연애한 지도 꽤 되고 나도 슬슬 한숨 돌리게 되고 해서 결혼 얘기도 가끔 나누고 그랬어. 한 2년 정도 후에 하자고 잠정 합의된 상황이었지. 올 가을 정도에 양가에 인사 드려서 서로의 존재를 알리기로 했고.


그런데 세 달 전인가, 주말인데 여친이 밖에서 만나자는 거야. 뭐 그것도 괜찮긴 한데 좀 낯설긴 하더라구. 우리가 데이트를 안 한 것은 아니거든. 사실 거의 늘 했지. 다만 순서가 그렇지 않았던 것뿐. 자주 보지 못하니까 얼마나 안고 싶겠냐고? 그래서 일단 내 집에 왔다가 같이 나가자고 했지. 그랬더니 "넌 맨날 그 생각 밖에 없냐?"고 전화로 쏘아붙이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지. "섹스 아니면 할 게 없냐?"고 그러는데 진짜 서운하더라.


자주 못 보는 연인이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는 당분간 섹스 안하겠다고 하더라고. 섹스 하러 자기 만나는 것 같다며. 하여간 그때부터는 좀 다퉜는데 대화가 잘 안 되더라고. 어찌어찌 풀긴 했는데 여친이 아예 섹스를 배제하니까 이상하게 막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안 생기더라. 지금은 안 만난 지 한 3주 정도 지난 것 같다. 카톡은 가끔 하긴 하는데, 당장이라도 가서 안고 싶긴 한데, 안지 못하게 하면 또 스트레스 받을 것 같고 해서 걍 견디는 중이야. 연애 최대의 위기가 이런 식으로 올지는 몰랐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듣다 보니 질문보다 답이 짧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단 연애 시절에 위기 겪지 않고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은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너의 입장에서 보자구.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싶은 것은 건강함의 지표 같은 것 맞다. 남자의 신체란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 건강한데 연인을 보고도 신체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까놓고 말해서 욕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문제가 심각한 거지. 몸에 이상이 있거나 아니면 사랑이 식었거나.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안고 싶은 건 지극히 당연한 거야. 안고 싶을 때 상대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네가 일단 스트레스 받을 만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정.


이번엔 네 여친 입장에서 보자. 한 번도 여자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될 가능성이 제로인 남자들이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생각해 보자. 충분히 오랫동안 사귀기도 했고 결혼 상대로 인정하기도 했으니 그녀에게 넌 분명 의미 있는 존재가 맞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생긴 거야. 겉으로는 만나면 섹스부터 하고 싶어 하는 점을 건드렸는데 그게 진짜 근본적인 이유인지, 그게 문제의 전부인지 알 수는 없어. 아마 아니라고 봐야지. 막상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게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게 생긴 걸 수도 있고, 너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남자가 치고 들어오는 상황일 수도 있지. 세상엔 좋은 남자들이 많잖냐? 네가 말하는 대로라면 네 여친은 다른 남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고, 네 여친에게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남자가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지.


마지막으로 섹스의 입장에서 한 번 볼까? 세상엔 온갖 양태의 섹스가 존재해. 신이 섹스의 과정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면 이 세상의 범죄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물질에 대한 인간들의 욕망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도 지금처럼 '창궐'하지 못했겠지. 나는 섹스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를 너무 부각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봐. 오히려 본질은 같은데 디테일이 다를 뿐인 거지. 즐거우니까 하는 것이거든. 오직 쾌락을 얻기 위해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랑하는 사이로 한정한다면 인간과 인간이 함께하는 행위들 중 가장 은밀한 그 행위를 통해 연인들은 서로의 실존을 주고 받는 거야. 단순히 육체끼리의 교감이 아닌 거지. 섹스를 통해 육체와 육체를 타고 영혼과 영혼이 넘나드는 거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거야. 동시에 내 육체와 정신을 통해 상대에게 기쁨을 제공하는 소중한 과정인 거지. 자기만의 쾌락을 위해 하는 섹스와 상대의 기쁨을 위해 하는 섹스는 다르겠지? 그래서 우리는 섹스를 통해 상대가 나를 배려하는지, 나와의 교감을 좋아하는지, 나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거지.


네 여친의 반응이 일시적이라면 문제없어. 그럼 그것이 일회적인 건지 알 필요가 있지. 얼굴 안 본지 3주나 지났다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락해. 뾰로퉁하다고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분위기 좋은 데서 저녁도 사고. 아, 장미꽃 한송이도 잊지 말고. 와인 한 잔 곁들이는 것도 좋겠지. 그냥 가벼운 얘기들로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말해줘. 특별한 얘기를 하라는 게 아냐. 같이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네가 행복한지, 그 동안 그래왔는지 느끼게 해주라는 거야. 그날은 심각한 얘기를 하지 말고.


그 다음엔 예전 주기보다 한 템포 빠르게 만나. 같이 데이트 해야지. 날 좋으니 한양 성곽을 따라 거닐어도 좋겠지. 네가 얼마나 그녀의 전부를 사랑하는지 그때 조근조근 얘기해. 그리고 너의 섹스관. 남자의 섹스관 말고. 그럼 네 여친도 여자 일반으로 애기하게 될 테니. 섹스에 네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얘기해 줘야 해. 어쩌면 네 생각과 달리 네 여친은 너의 배려심이나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너의 마음을 전혀 몰라 주는 얘기를 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거나 과민반응 하지는 마.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듣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하는 거다.


결혼하고 나서 섹스리스 되는 커플 많아. 그런데 그런 커플들 사이가 좋으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전자는 몸에 대한 불만 빼고는 그냥 맞춰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나름의 '정'을 갖고 사는 커플이다. 결혼했는데 야동 보며 자위라도 해야 하는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없을 수는 없는데 아예 여자가 섹스에 관심이 없는 경우 남자만 견디면 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 불감증 수준인데 남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여자는 밖에서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많아. 어떤 경우든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 정으로 살려고 결혼해서 함께하는 건 아니니까. 함께 사는 사람이 '난 너의 몸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해' 또는 '난 너의 몸을 통해 쾌감을 얻고 싶지 않아', 심지어 '난 나의 몸으로 네게 기쁨을 주고 싶지 않아'라는 입장에 서 있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을 수는 없지. 사이가 나쁜 경우는 몸의 단절이 정신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거지. 몸의 교류가 가능하다면 평소에는 가능하지 않은 교감 어린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거든. 몸이 끌리지 않으니 정신의 온도마저 내려가고 마는 거야. 거의 이혼으로 귀결돼.


인간은 수많은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는 동물이다. 인내, 배려, 공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몰라서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되지 않는 거야. 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어. 몸이 머리를 이겨야만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 말은 제외. 말은 두뇌 작용의 결과물이야. 그래서 말에 속으면 안돼.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의 말은 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야. 말을 다 버릴 때 상대를 냉철하게 볼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성곽 아래를 산책하면서 건네는 네 말에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거야. 말로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지. 서로의 생각의 윤곽 정도를 가늠하는 것으로 충분해. 네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해서 솔직히 그것이 다 진실일 수는 없어. 상대가 그렇게 받지도 않을 거니까. 그러니 너도 네 여친의 말을 100% 진실로 판단하고 그것에 반응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거지.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든 하나는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일 더 이상 몸이 가까워질 수 없는 상황임을 안다면 그 사이는 회복되기 어려워. 사랑은 주는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우린 들었지.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면서 상대에게 무엇을 주는 거지? 물건? 마음? 몸? 그런데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지만 남이 되어 떠나간다고 노래하잖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상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거야. 그런데 그 기쁨이 내 기준이면 안 된다는 거지. 그래서 사랑이 어려워. 내가 상대를 통해 얻고 싶은 기쁨이 있는데 상대는 그 기쁨은 외면하고 다른 기쁨들을 주려고 한다면? 그 기쁨의 차이가 정말 큰 거야.

일시적인 문제로 끝나고 너와 네 여친의 사이가 전처럼 다정해지면 좋겠다. 그런데 만일 섹스에 대한 네 여친의 입장이 확고하다면 넌 아마 네가 얻고 싶은 기쁨의 상실로 인해 그녀가 주려는 다른 기쁨들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거야. 일단 그 상황은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하나 더, 지금 원하는 기쁨을 기꺼이 상대에게 주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향후에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해. 기쁨을 함께하지 못하는데 슬픔을 함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얘기지. 물론 너의 섹스가 네 생각만큼 충분히 그녀를 배려하는, 둘을 위한 섹스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하다 보니 엄청 길어졌네. 결론! 건강한 한 즐겁게 섹스하는 커플은 아름답다. 건강할 때 서로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만일의 경우 둘 중 하나가 건강하지 않을 때에도 몸을 넘어선 정신만의 사랑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상대는 내게 충분한 기쁨을 주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니까. 나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거지.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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