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Train)-7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실내는 타원형이었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 개의 동그란 전등이 박혀 있었고 불빛은 주황색이었다. 자신이 앉아 있던 1인용 침대에는 회색 시트가 깔려 있었고, 회색 베개 옆에 회색 베갯잇 두 장과 회색 이불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512. 은희의 왼쪽 손목에 하얗게 새겨진 번호는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인지 은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창 밖의 풍경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있는 곳은 구리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감옥들 중의 하나이고,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번호는 5층 12호실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계란처럼 생긴 독방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감옥 건물은 15층 높이로 서로 마주보며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다니는 레일을 따라 계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란들은 타워를 떠났다가 돌아와 빈 곳을 속속 채웠다. 어디론가 다녀온 계란은 타워로 돌아온 후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직으로 배열된 계란들 옆으로 지름 1m 정도의 금속관이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계란은 그 관과 맞물려 있었다. 계란 안은 1인용 침대와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전부였다. 침대와 변기는 제 자리에서 조금의 이동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금속 틀에 갇혀 고정되어 있었다.


DALL·E 2024-06-18 23.02.39 - View from the 5th floor of an indoor facility, looking up at numerous towering egg-shaped cells that extend over 100 stories high. The scene is enclos.png


은희는 회색 시트가 깔려 있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희의 전면 허공에서 화면이 나타나며 바깥 세상의 뉴스를 전했다.


-3일전 연락이 두절된 도서출판 북티잔 대표 이은희 씨의 차량으로 보이는 빨간색 페라리 자동차가 35번 국도 옆 숲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뺑소니 차에 의해 조수석 측면을 강하게 부딪힌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차량에 탑승 중이었던 이은희 씨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입니다. 경찰은 평소 신망 높은 기업인이었던 이씨가 원한 관계에 얽혔을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 도서출판 북티잔으로부터 해고된 전 직원들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소환 조사를 벌일 예정입니다. 한편, 회사의 CCTV 기록에 사고 당일 낮 이씨의 전 남편인 조모 씨가 방문한 것으로 드러나 경찰은 조씨의 행방을 찾는데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소설가로 알려진 조씨의 행방 역시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이씨의 실종과 조씨와의 연관성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DALL·E 2024-06-19 10.27.16 - A realistic illustration of a woman named Eunhee sitting on the middle of the bed, which is attached to a smooth, copper-colored metal wall that resem.png


화면이 바뀌어 유니폼을 입은 미모의 여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그에 오신 이은희 님,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이은희 님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은희 님이 준수할 수칙과 생활의 편의를 위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매일 오전 9시에 그날의 식사가 도착합니다. 출입문 하단의 배식구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힙니다. 이은희 님이 할 일은 배식이 끝날 때까지 침대 위에서 대기하는 것입니다. 배식이 끝나고 배식구가 닫히면 그때 식사를 하십시오. 남은 음식은 별도로 제공되는 용기에 넣으십시오. 소중한 재생 자원으로 활용됩니다. 음식물 외의 모든 쓰레기는 역시 식사와 함께 제공되는 봉투들에 분리하여 보관하십시오. 익일 배식 시간에 수거할 수 있도록 모두 제출하십시오. 입주일 기준으로 한 달에 한 번 비누, 치약, 칫솔과 같은 생활 필수품이 지급됩니다. 아껴 쓰시기 바랍니다. 절약은 인간의 제일 가는 미덕이어야 합니다. 매일 정오, 이은희 님이 풀어야 할 문제가 출제됩니다. 문제를 맞출 때마다 에그의 위치가 한 층씩 올라가며 틀릴 때마다 한 층씩 내려갑니다. 15층에 도달하면 이은희 님은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보내집니다. 이은희 님의 역량에 대한 사전 평가 점수에 따라 이은희 님은 5층에서 시작하는 어드밴티지를 누리셨습니다. 그럼 에그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돼!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아니라구! 도대체 니들 뭐야, 나를 왜 이곳에 가둬둔 거냐구! 이, 미친 놈들아!”


이미 사라진 화면 자리에 베개를 던지며 은희는 악을 썼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DALL·E 2024-06-19 10.52.45 - A realistic illustration of a smooth, featureless copper-colored wall with no patterns or lines. In front of this wall, a holographic screen is floati.png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 말대로 끼니는 하루에 한번 제공되었다. 음식은 남길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남을 수가 없어서 버려지지 않았다. 배식선은 당일의 끼니를 던져 넣었고 동시에 전일의 쓰레기를 수거해갔다. 두통은 사라졌다. 손목에 201번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민성은 8시 반에 깨어 씻고 식사를 기다렸다. 너무 일찍 일어나면 허기를 참기 어려웠다. 시간에 틈이 생길 때마다 창문에 코를 붙이고 에그 밖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림잡아 수백 미터 길이로 에그 타워가 뻗어 있었다. 아침 9시가 다가오면 수많은 배식선이 타워마다 달라붙어 하루치의 식량을 배식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치 식량은 핫도그 모양의 햄버거 세 조각이 제공되었다. 물은 따로 지급되지 않았다.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마셔야 했다. 햄버거는 빵과 패티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두 개의 패티가 들어 있었다. 맛은 무미건조했다. 그 무미함은 오히려 먹는 것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크기가 작아 아껴 먹어야 했다.


DALL·E 2024-06-19 12.00.26 - An illustration of a torn hamburger wrapper spread out on a surface. On the wrapper are three equal pieces of a single hamburger that has been cut int.png


아침을 먹은 후 민성은 적당히 소화가 되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다가 정확히 10시에 운동을 시작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신체를 단련해야 했다. 위치를 달리하며 나타나는 숫자가 에그 도시의 시간을 알려 주었다. 팔 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 같은 근력 운동에 집중했다. 정확히 낮 12시에 가상의 에그 공간이 생겨났고 그 안의 모니터 화면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다. 문제는 어렵다고도 쉽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문제의 대부분은 민성 자신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고 답변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이틀 연속으로 정답을 맞추지 못한 후 민성은 신중했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 때문에 미리 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이 바뀌기 전까지만 답하면 되었다.


오후 2시에 낮잠을 잤고 한 시간 후에 깨어난 후 다시 한 시간 동안 운동했다. 땀을 뻘뻘 흘릴 때까지 에그 안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다. 샤워는 최소한의 물로 빠르게 끝내야 했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을 첫날을 보내면서 곧바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샤워 중에 물은 끊겼고 비눗물은 씻어낼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마실 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허기를 없애기 위해 세 번째 햄버거 조각을 힘들게 먹은 후 다음날 오전 9시에 물 공급이 재개될 때까지 민성은 극심한 갈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당신의 소설 『그림자들의 숲』에서 그림자들은 인간들을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림자들이 모여드는 곳은 숲입니다. 그러나 숲은 그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나뭇잎들로 달빛을 모조리 막아 버립니다. 그림자들은 숲 밖에서 햇빛에 영원히 녹아 버리고 맙니다. 왜 그림자들을 죽였습니까?”


2층에서 문제는 민성에게 따지고 들었다.


DALL·E 2024-06-19 12.55.54 - A young man named Minseong inside an egg-shaped room with smooth, seamless copper walls. He is looking at a floating monitor screen in front of him, w (1).png


“당신의 전 남편이 키우던 개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12시에, 모니터는 질문했다. 모니터 앞에 가상의 키보드도 놓여 있었다. 은희는 키보드 앞에서 햄버거 조각 하나를 씹다가 남은 것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이 개떡 같은 자식들아,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나를 가두고 지금 뭐 하는 거냐고?”


키보드를 내려친 은희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동안 화면의 질문 아래에 몇 개의 알파벳이 의미 없이 나열되었다. 창 밖 먼 곳에서 몇 개의 에그가 레일을 달리고 있었다. 첫날 이후 에그는 바깥 세상의 소식을 전해 주지 않았다. 얼굴 하나 높이와 얼굴 두 개 너비의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올려다 본 에그 타워들의 풍경에는 변함이 없었다.


‘만일 이곳이 사라진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 시설이라면 누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아냐, 그럴 리 없어. 만일 그렇다 해도 도대체 왜 나를? 아냐, 아냐, 이은희 침착하자.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곳을 나가야 한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더 힘들었던 옛날을 생각하고 버텨야 한다.’


은희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키보드 위에 조심스럽게 두 손을 올렸다.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 아무렇게나 씌어져 있는 영문 소문자 알파벳을 지우고 나서 ‘지드’라고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축하합니다, 512번, 정답입니다. 내일은 6층에서 아침을 맞이하시겠군요.”


화면이 바뀌며 축하 메시지가 나타났다. 에그 안에서 누구의 게임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15층까지 올라가 봐야 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의 실마리는 그곳에 있을 터였다. 느릿느릿 민성의 얼굴을 핥으며 숨을 거두는 지드의 눈뜬 얼굴과 지드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민성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본적 없는 그 장면이 눈에 아른거렸다.


DALL·E 2024-06-19 13.27.37 - A young woman named Eunhee inside an egg-shaped room with smooth, seamless copper walls. She is looking at a floating monitor screen in front of her,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