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내비게이션은 특유의 끈적이는 여성 목소리로 도착을 알렸다. 깜빡 잠이 들었었다는 것을 민성은 알았다. 오른쪽으로 목이 꺾여 있었던지 어깨가 결렸다. 좌석을 세우고 앉아서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하자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차는 허름한 공장 지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 양쪽에는 버려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차들이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인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내릴 것 같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좁은 골목을 비틀거리며 차는 나아갔다. 오래 전 지상에서 말끔히 사라졌던 전봇대 두 개가 서로 기대 서 있는 삼거리에서 차는 좌회전했다. 골목은 거대한 폐차장이었다.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던 시절의 구식 차량들이었다.
골목이 약간의 오르막 경사를 보이고 있었다. 차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미끄러져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찌그러진 철 대문이 나뒹굴고 있는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뒤로는 산이 성처럼 붙어 있었다. 햇빛이 차단된 실내로 진입하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차는 곧바로 전조등을 켰고 공장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온갖 폐자재들과 타이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순간 뒤쪽에서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민성이 뒤를 돌아보는 것과 때를 같이해 정면에서 밝은 조명이 켜지면서 민성의 눈을 부셨다.
“도착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도착 지점의 위성 좌표와 함께 ‘도착 완료’라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시동을 껐다. 민성이 해야 할 일은 차에서 내리는 것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자 조명의 뒤쪽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들은 인간의 몸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의 몸이 닿는 곳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숲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숲은 인간의 그림자들이 숲으로 들어왔을 때 숲 속의 그림자들을 점령하고 지배하고 결국 몰아낼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간들의 본능이므로 인간의 체취를 간직한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숲은 예견한 것입니다. 숲을 잔인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라져도 숲이 살아남으면 생명은 지속됩니다. 그림자들은 지구의 입장에서 포기되어야 할 인간들을 대변합니다. 나는 숲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엔터 키를 누르자 화면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모니터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상태로 십여 초를 머물다가 꺼졌다. 화면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다음날, 맞은편 에그 타워의 눈높이는 훌쩍 높아져 있었다. 계산이 맞다면 민성은 10층 높이에 올라와 있었다. 하루 만에 8층을 상승한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전날의 답변이 이 도시를 관장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음이 분명했다.
9시, 배식구가 열렸을 때 들어온 것은 세 개의 종이 포장이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스테이크와 옥수수, 쌀과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주먹밥, 그리고 닭고기 튀김이었다. 에그들의 도시에서 질문과 대답은 가둔 자와 갇힌 자 간의 소통 방식이었고, 음식은 대답의 내용에 대한 동기부여 수단이었다. 대답의 내용에 대한 평가 기준은 알 수 없었지만 민성의 입장에서 좋은 평가에 대한 의미 있는 보상은 음식이 아니라 상승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5층이었다.
허기는 자는 동안에 못 견디게 밀려왔다. 희미한 창 밖 조명에 의지하여 바닥을 더듬어 찾은 딱딱한 햄버거를 은희는 걸신들린 듯 먹어 치웠다. 하루 분의 끼니는 그런 식으로 처리되었다. 좁은 창에 어렴풋이 비치는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얼굴의 감촉은 기름기 하나 없이 푸석거렸다. 마음을 다져도 눈에서 자주 눈물이 흘렀고 눈물이 마를 때쯤이면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은희는 자주 잤다.
하루에 한 문제라는 조건이 숨을 막히게 했다. 날마다 다 맞춘다고 하더라도 최소 보름을 더 견뎌내야 했다. 이번처럼 간단하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아래층으로 후퇴했을 때의 절망 앞에서 은희는 깊은 무력감에 젖었다. 언제 어느 날 또 그런 식의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우울을 증폭시켰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 것, 더욱이 진짜 삶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진 기억 속을 집요하게 헤매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은 은희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동네를 산책할 때 지드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어디였나요?”
10일 내내 지드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던 화면에는 어제 틀렸던 문제가 다시 떠올라 있었다. 질문을 보는 순간 은희의 가슴 속에서 분노가 일었지만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맞추지 못할 경우 수감 기간은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었다.
은희는 심호흡을 하며 침대 위로 올라가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기억을 박박 긁어서라도 끄집어내야 했다. 지드의 길고 흰 꼬리가 힘 있게 서서 좌우로 살랑거렸다. 지드의 등에서 뻗어 나온 끈의 끝에 민성의 손이 있었다. 휴일 늦잠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베란다에서 바깥 공기를 쐬고 있을 때 아파트 아래에서 공원을 향해 나란히 걸어가는 민성과 지드의 모습이 보였다. 공원은 어제의 답이었다. 이미지로 남아 있는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은희는 지드의 커다란 덩치와 언제나 좋다고 달려드는 미련스러움이 싫었다. 무엇보다 지드에게서 전해지는 민성의 냄새와 이전 주인에게서 학대 받고 버려진 지드의 출신에 정이 가지 않았다. 민성과 지드는 버려진 존재들이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에 소용될 구석이 없어서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존재들끼리의 우정은 값싼 소설의 소재로나 적당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자기가 버려질 것이었다. 은희는 민성이 지드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무엇이든 건져 올려야 했다.
회식 후 자정을 넘겨 들어갔던 날이었다. 변함없이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지드를 외면하고 침실로 걸어갈 때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민성이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렇게 좋다고 하는 아이를 외면하고 싶냐?”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사람이나 개나 똑같은 것 아닐까?”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곧바로 받아 친 은희의 답변에 민성은 남은 맥주를 털어 넣은 다음 소파에서 일어나 지드를 안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 내일 나가서 서류 보낼게. 지드가 시장 산책을 못해서 서운하겠지만 금방 적응하겠지. 미안하고 고마웠다. 잘 살아.”
자판을 눌러 ‘시장’이라고 입력했다. 화면이 정답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은희는 자기도 모르게 털썩 침대에 누웠다. 아침이면 2층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었다. 더 이상은 지드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은희는 간절히 바랐다. 아직도 올라갈 길은 멀었다.
“어서 오십시오, 탐.”
두 사람 중 중년의 남자가 민성을 환영했다. 다른 남자는 백발의 노신사였다. 둘 다 검은 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환영한 남자는 전화를 건 사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저는 조민성입니다.”
“예, 압니다, 아주 잘 알지요. 회장님?”
민성을 환영한 남자의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민성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볼드윈이라고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전화를 건 사내의 것이었다. 사내의 손은 외모에 비해 젊은 목소리를 닮아 단단하고 힘이 넘쳤다. 그의 얼굴은 어디선가 만난 듯한 느낌을 풍겼다.
“가시지요.”
사내가 몸을 돌려 민성 옆에 나란히 섰다. 볼드윈의 비서 조나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첫 번째 남자가 길을 안내했다. 두 사람보다 몇 발자국 앞에서 걸음을 재촉한 그는 막다른 벽 앞에 서서 두 손바닥으로 서로 다른 두 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잠시 후 벽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그 너머에서 몇 미터 간격으로 5개의 육중한 철문이 차례로 길을 열었다. 마지막 문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민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간절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만일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연애 시절의 은희라고 답했을 것이었다. 민성은 그러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잠시 슬픔이 밀려들기도 했지만 에그에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리움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쓴웃음이 났다. 사실이었다. 그리움의 대상이 생생히 남아 있을 때 그리움의 대상을 향해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은 고통일 것이었다. 지금의 민성에게 고통은 없었다. 적어도 사람으로 인한 그리움의 고통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간절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철저하게 실패한 우스꽝스러운 인간일 것입니다. 질문에 어긋나는 답변이겠지만 하겠습니다. 나는 지드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드는 매 순간 그립습니다. 그리움의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적응에 실패한 한심한 인간일 것입니다.”
민성의 답변에 이번에도 화면은 파란색으로 응답했다. 다음날 에그는 제자리에 있었다. 가둔 자들이 원하는 정답은 아니었지만 정답이 아닌 것도 아니라는 의미였을 것이었다. 식사는 동일하게 제공되었다. 햄버거를 먹었던 시절에 비할 바 없는 맛이었다. 그날부터 질문은 소소한 단답형으로 이어졌다. 여행지 중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과 그 이유를 묻는 것 따위였다. 정답이 별도로 있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아침에, 에그는 한 층씩 위로 올라가 있었다. 10층에서 식사는 다시 바뀌어 세 끼니가 세트로 제공되었다. 아이스 박스 겉면에 아침, 점심, 저녁이라고 씌어 있었다. 아침 세트는 밥과 스크램블드 에그, 베이컨, 소시지, 점심 세트는 밥과 국, 반찬 3종, 그리고 저녁 세트는 밥, 불고기, 갈비, 김치로 각각 구성되어 있었다. 에그는 마치 나가지 말라고 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듯 대접의 질을 높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