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Train)-9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화면은 지드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쓸데없는 소소한 질문들을 해댔다. 청소년 시절의 꿈과 그 꿈을 갖게 된 이유 따위를 물었다. 가장 기억나는 여행지의 추억을 묻기도 했다. 그 질문 앞에서 은희는 오랫동안 답을 적지 못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민성은 국내 여행지를 좋아했고 은희는 언제나 외국을 좋아했다. 민성은 산과 바다를 좋아했고 은희는 으레 그렇듯 도시를 좋아했다. 민성은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을 좋아했고 은희는 늘 사람으로 북적대는 곳을 좋아했다. 산과 바다의 고요 안에서 은희는 외로웠고, 도시의 부산스러움을 민성은 괴로워했다. 은희는 도시와 도시를 빠르게 넘나들며 도시의 흥겨움을 느끼고 싶어했고, 민성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을 골라 눌러 있고 싶어했다. 둘의 여행은 출발되지 못했다.


관광용 구식 열차를 타고 무박 2일로 떠난 여행에서 민성은 프로포즈했다. 열차가 멈춘 종착역 플랫폼에서 바로 연결되는 해변으로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고, 민성은 은희의 손을 잡고 느리게 걸었다. 새벽 2시, 하늘 끝에서 파도가 쉼 없이 달빛과 별빛을 실어 나르는 해변에서 민성은 한쪽 무릎을 꿇고 은희에게 결혼해 달라고 말했다. 별이 가득한 민성의 눈동자는 순수해서 아름다웠다. 여전히 닿을 수 없는 이상의 빛에 매혹되어 있던 은희는 그의 소박한 프로포즈를 수줍게 받아들였다. 민성은 가난했지만 장래가 창창한, 준비된 성공자였다. 해변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놀던 사람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축하의 함성을, 기타 연주를, 춤을 선물해 주었다. 은희는 행복했다.


화면은 꺼졌고 그뿐이었다. 화면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은희가 6층에 있던 날의 밤이었다.


DALL·E 2024-06-20 08.44.52 - A romantic scene of a young Min-sung proposing to a young Eun-hee at Jeongdongjin beach at 2 AM. The beach is illuminated by a realistic moon and star.png


“당신은 지구에 필요한 사람입니까?”

“질문의 요지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에기라고 이름을 밝힌 화면은 어느 날 말을 걸어왔다. 에기의 질문은 대화를 유도했고 대화의 내용에 따라 층의 나아감과 멈춤, 후퇴를 결정했다. 에기는 언제나 5분 안에 대화를 종료했다.


“말한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재능, 당신의 생각, 당신의 몸,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낸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과 앞으로의 삶이 지구의 입장에서 의미 있는 것인지 묻고자 합니다.”


“만일 제가 수십억 마리의 개미 무리 중 한 마리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본능에 충실한 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개미의 삶에 대해 지구가 시비를 걸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입니다. 당신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인 한 나는 지구에게 죄가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개미 한 마리가 개미 전체이듯 나 한 명도 인간 전체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끼친 해악을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고 지구가 판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지구에서 한 것이라고는 단 두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는 글로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쉽게도 나는 내 글을 통해서는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도, 먹고 살 수도 없었습니다. 남의 글을 대신 써 주는 대가로 겨우 연명할 수 있었지요. 남의 글을 쓰면서 입에 풀칠하는 작가는 그렇다면 필요 없는 존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육체 노동을 하는 대신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개미들이 있다면 불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 개미 몇 백만 마리쯤 있다 해도 지구가 쓸모 없는 개미들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구에게는 그런 방식의 평가시스템이 없을 듯 합니다. 지구는 모든 생명체의 삶을 다 인정해 줄 것으로 봅니다. 결국 필요 여부는 지구 위에 인간들이 건설한 사회 시스템이 결정할 뿐이지요. 지구에서 나는 필요하지도 불필요하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공동체에게 쓸모 있는 일을 하고자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필요 차원에서 보면 나 하나 없어져서 내가 해왔던 일을,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군요. 지구 입장에서는, 필요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적으로 답할 수 있겠습니다.”


에기는 아무 의견을 내지 않고 꺼졌다. 다음날 민성은 5층에 와 있었다. 하루 아침에 50%의 폭락을 맞아야 하는 까닭을 민성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이 벌이는 일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고 논리도 없었다. 민성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 자신의 할 일이 없음을 인정했다. 식사도, 대화의 단절도, 초보적인 질문들에 다시 노출되는 것도 다 수용해야 했다. 민성은 깊게 명상했다. 바람에 가끔 새소리가 실려왔다.


DALL·E 2024-06-20 09.12.41 - An illustration of Min-sung, a young Korean man with short black hair and sharp features, dressed in a gray short-sleeve t-shirt, meditating deeply as.png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에기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활자들이 제멋대로 춤을 추던 낡아빠진 옛 책들을 떠올리게 했다. 은희에게 그 책들이 보여 준 것은 관념의 세계였다. 그래서 그 책들은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관념의 세계에서 넘어온 지식과 사유는 세상을 사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 끌어올린 것이 현실 세계에 쌓이면 쌓일수록 세상은 비뚤게 보였다. 비뚤어진 눈으로는 세상의 승자가 될 수 없었다. 성공으로 이어진 길은 오물로 범벅된 것이어서 악취를 긍정한 후에야 반듯하게 보였다. 돈을 번다는 건, 돈을 벌어 성공한다는 건, 그 냄새에 몸과 영혼까지 적셔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후각은 예민한 것이어서 은희가 승자의 체취를 갖게 되자 사람들이 곁으로 모여들었다. 승자가 곧 강자였다. 패배에 익숙한 평범한 사람들이 약자로서 강자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 그것이 세상의 실체였다.


“나는 승자입니다. 따라서 강자입니다. 능력 있는 강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갑니다. 강자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원시 시대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약자들만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인류의 진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당신은 제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존재하려면 가치가 창출되어야 합니다. 황무지에서 흙을 퍼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 쓸모 없는 땅을 개간하여 농작물을 거둔 후에야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가치란 그런 것입니다. 가치를 창출한 일만이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씨앗을 심고 가꿨어도 거둘 것이 없으면 무용한 일, 무가치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치를 창출한 사람만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인간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적습니다. 나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만들어 내는 가치는 당신에게 대부분 귀속되는 데도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을 고생을 해서 책을 만들고 팔아서 거둔 이익으로 세금을 냅니다. 서점에서는 내 책을 팔아서 돈을 법니다. 작가도, 서점도, 그리고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내가 만든 가치의 혜택을 받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내 소득의 많은 부분을 주기적으로 소비했기 때문에 그 소비에 연결된 많은 사람들이 또 먹고 살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작동해 왔습니다. 내가 가치 창출을 멈추면 그 만큼의 가치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신 그 만큼의 불행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가치 창출을 중단하면 그럼 당신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요?”


“사실 나는 평생 일하지 않고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 없을 만큼의 가치를 쌓아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중단할 일이 없는데 그것을 가정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당신은 에그에서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적어도 여기에서는 가치 없는 사람일 수 있겠네요. 알겠습니다.”


에기는 파란색으로 변한 후 곧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은희는 창 밖으로 높아진 타워의 몸통에 경악했다. 은희는 3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전날의 대답으로 인해 수십 일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은희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인간의 음식으로 볼 수 없는 예전의 식사 메뉴도, 모습을 감추고 우스꽝스러운 질문 하나만 던져 놓는 화면도 은희의 속을 터지게 만들었다. 15층에 도달하려면 경험적으로 다시 수십 일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이런 불공정한 삶은 적어도 승자가 된 은희의 세계에는 없었다. 은희는 분노에 휩싸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에그에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서 절망은 다시 폐부 깊숙한 곳에서 스멀거렸다.


DALL·E 2024-06-20 09.37.40 - An illustration of Eun-hee, a young Korean woman with long black hair, dressed in a copper-colored short-sleeve t-shirt and matching copper-colored pa.png


굵은 땀방울이 연신 눈동자 속으로 파고 들었다. 군살이 잡히지 않는 단단해진 몸이 민성은 마음에 들었다. 날마다 몇 시간씩 빠짐없이 실행한 명상 덕에 잡생각들도 말끔히 사라졌다. 언제고 사유의 바닥 깊은 곳으로 내려가 거침없이 유영할 수 있었다. 에그에 들어온 지 100일째의 자신의 변한 모습이었다.


“201번, 좋아 보이는군요.”


에기는 민성이 명상 중일 때를 제외하고 아무 때나 수다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오후 3시 무렵이었다.


“고맙소.”

“당신은 마지막 질문을 통과했습니다. 이제 당신께 두 개의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내일 에그를 나갈 수 있는 권리와 그 권리를 누군가를 위해 양도할 권리.”

“이곳에 나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에기는 말없이 화면을 바꿨다. 화면은 또 다른 에그 안의 모습이었다. 구리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벽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들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오랫동안 감지 않아서인지 머리카락은 푸석해 보였다. 여자가 뒤로 돌아섰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서히 주저앉았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당신과 같습니다.”

“이유는?”

“당신에게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지금 몇 층에 있습니까?”

“3층입니다.”


민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은희는 본디 약한 여자였다. 착하고 여린 심성이 가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짓눌려 겉으로 독하게 드러났을 뿐이었다. 그것을 드러내게 만든 것은 은희 가 아니라 민성 자신이었다. 이제는 남의 여자였지만 은희를 에그에 버려둘 수는 없었다.


“저 여자를 대신 내보내 주십시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곳은 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에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DALL·E 2024-06-20 13.36.35 - An illustration showing the interior of a sleek, egg-shaped room with smooth, seamless copper-colored walls and floor. There are no patterns or furnit.png


“512번,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


눈물 젖은 눈으로 은희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세 번째 내려온 3층에서 에기의 음성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내보내 주세요. 그게 제 행복입니다.”

“에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아뇨, 당연히 행복했습니다. 여기만 나가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군요. 에그를 나가기만 하면 행복해진다? 에그 안은 불행이고, 에그 밖은 행복이라는 건가요?”

“그래요, 맞습니다. 제발 좀 저를 내보내 주세요.”


은희는 벌떡 일어나 화면 앞에 붙어서 소리쳤다.


“그렇다면 내보내 드리지요.”

“정말요? 정말 내보내 주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요? 내보내 주시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당신 말대로라면, 에그 밖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곧바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맞나요?”

“맞습니다. 그럼요.”

“좋습니다. 내보내 드리지요. 그 대가로 여기에서의 당신의 모든 기억은 제거될 것입니다. 상관 없겠지요?”

“상관없어요. 오히려 다행입니다, 여기를 깡그리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에그에서의 생활이 고통스러우셨나 보군요.”

“그래요, 고통스러웠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어차피 사라질 기억이니 말씀 드리지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당신은 에그를 나갈 자격을 얻지 못했습니다. 조민성 씨가 자신의 권리를 당신을 위해 양도한 것입니다. 그럼 침대에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에그가 이동합니다.”


DALL·E 2024-06-20 13.45.34 - In a smooth copper egg-shaped room with no patterns or lines on the walls or floor, Eunhee, wearing copper-colored short-sleeved t-shirt and sweatpant.png


샤워를 하는 내내 민성의 뇌리에서 에기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나지 않았다.


“에그를 나가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생각입니까?”


은희가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일주일 만에 에기가 말을 걸었다. 민성은 14층에 머물러있었다.


“사람들에게 에그의 실체를 알릴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사람들이 당신 말을 믿어 줄까요?”

“길은 제가 찾을 생각입니다. 당신들이 저를 막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 길은 무엇을 위한 길인가요?”

“사람들이 이유 없이 사라져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갇혀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 할 수는 없습니다. 은희처럼 이곳을 버텨낼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당신들이 다시 저를 가둔다 해도 저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이유 없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에기의 말이 민성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듯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의 길과 우리의 길은 하나의 목적지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민성의 옷이 개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옷이었다. 클럽에 갔던 밤에 입었던 그 옷이었다. 비로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자 노란색 제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민성을 바라보았다. 제복은 샛노래서 햇빛에 대한 그리움을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진 자리를 꿰찬 것은 지드와 태양이었다. 민성은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종일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졌다. 잠시 은희가 생각났다.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에기의 말대로라면 은희는 자신이 에그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터였다. 남자의 지시에 따라 왼팔을 내밀었다. 남자가 민성의 손목에 스캐너를 닮은 작은 도구를 대고 떼자 더 이상 번호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남자가 건넨 금속 띠를 이마에 두르자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검은색 유리 마스크가 내려왔다. 남자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남자를 따라 직사각형 모양의 긴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 에그의 문이 보였다. 복도 끝의 창문으로 민성 자신을 데려온 것처럼 에그 몇 개가 다가오고 모습이 보였다. 새로운 거주자를 싣고 가려는 것인지 떠나 보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통로의 끝에 도착하자 매끄러운 은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차 한 대가 정차해 있는 플랫폼이 나타났다. 열차 앞은 곧장 터널이었고 플랫폼에는 약 스무 명의 사람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얼굴에 동일한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여행을 떠나려는 정거장의 풍경과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줄의 맨 앞과 맨 뒤에 위치한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의 신호에 맞추어 출입문이 열렸고 서로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탑승을 시작했다.


총 40개의 좌석이 가운데 통로를 기준으로 한 줄에 두 개씩 늘어서 있었다. 한 줄에 한 사람씩 앉아 있었고 민성은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와 통로를 걸어 우측의 맨 뒤에 앉았다. 맨 뒤 벽 중앙에 있는 별도의 좌석에 제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한 명은 출입문 앞에서 실내를 한 번 훑어보고 나서 문 밖으로 사라졌다. 출입문이 닫히고 천장의 등이 모두 꺼진 채 맨 앞 벽의 주황색 미등만이 남겨졌다.


열차가 출발하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불려왔던 세상에서 다시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에기가 다시 언제 어떤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천장에서 흐릿한 연기 같은 것이 분사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가물거렸다. 사람들이 고개를 꺾고 잠들기 시작했고, 쓰러지는 민성의 눈에 방독면을 쓴 제복의 남자가 보였다.


DALL·E 2024-06-20 14.09.11 - In a small, compact tunnel-like indoor platform setting, a sleek, one-car, windowless silver train resembling a hyperloop but not actually a hyperloop.png